박완서님 작품 중에 [엄마의 말뚝]이라는 자전적 소설이 있습니다. 일제시대를 포함한 근현대사가 배경입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아들과, 딸(화자) 씩을 건사하며 살아가는 엄마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는 자신의 삶의 목표를 자식 교육에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무작정 개성을 떠나 서울에 입성하고, 서울에서 자식들에게 신문물과 신교육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죽도록 바느질품을 팔며 독하게 살면서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식 교육 잘 시킨 부모에게 보내는 존중
지금은 비록 가진 재물이 없지만, 엄마는 개성의 양반집 출신 며느리로써 자존심과 콧대가 높습니다. 그런 엄마가 유독 바닥 상것 취급을 받는 물장수에게만큼은 친절을 넘어 밥까지 챙겨 주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곤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물장수의 아들이 전문학교에 다니기 때문이었습니다.(일제 때의 전문학교는 지금의 전문대학이 아니라 오늘날 의사나 법관을 양성하는 곳)
남들이 업신 여기는 물장수이건만 곤궁한 삶속에서도 자식을 훌륭히 가르치고 대학까지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물장수를 우러러 본 것입니다.
엄마의 높은 교육열과 교육에 대한 맹신이 마치 말뚝처럼 엄마의 삶을 단단하게 묶어 두고 지배했다고 딸인 화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엄마의 집요함과 굳건함이 지금의 자신(나름 성공한)을 만들어 주었다고 회상합니다.
방목과 엄마의 책무
요즘 학부모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되는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면 좋겠어요.
공부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들도 많잖아요.
꼭 명문대 가고, 악착같이 살 필요가 있나요?”
저는 위의 물음들이 다 의미가 있고, 또 다른 삶의 방향으로 충분히 탐색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대신 전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의 물음들이 깊이 있는 사색과 행동적 대안 속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제게는 상담 과정에서 나오는 학부모님들의 위와 같은 견해가 단순한 회피와 푸념으로 들리는 것은 왜 일까요? 자녀의 성공과 엄마의 고생은 정비례한다는 것이 저의 믿음이자, 역사 속에서 무수히 증명된 사실이기도 합니다. 방목과 엄마의 책무를 혼돈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분명한 건 학창시절에 높은 목표를 갖고 공부에 집중한 학생들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건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학교를 졸업했을 때 취업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또 분명한 건 학창시절에 몸에 밴 노력하는 습관과 몰입하는 습관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성공 확률이 높은 건 아직까지는 공부이다!
공부 안 해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예인이 되거나, 운동선수가 되거나, 혹은 게임만 잘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소위 성공한 연예인, 운동선수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김연아, 박지성, 설현, BTS 같은 유명인이 될 확률 말입니다.
서울 상위 20개 대학교에서 매년 10만 명 씩 졸업생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 중 1만 명 이상이 연봉 1억 원 이상 받을 확률이 있는 집단군이라고 합니다.
매년 무려 1만명이!
학력이 연봉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시스템은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과제이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사회에서 공부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고 안전한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학부모님 우리의 마음속에 흔들리지 않은 이런 말뚝 하나쯤 박아 놓으면 안될까요?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보람을 찾는 것이 인생에서 성공하는 길이라고. 우리 자녀들이 학창시절에 학교에서 공부라는 주어진 과제에 최선을 다하고 보람을 찾는 것이 지금 성공하고 있는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운정 열린고등부학원 고수남 원장
파주 열린학원 대표이사
문의 031-94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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