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 학습’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불법적인 용어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앞선 학습’, ‘미리 학습’이라는 말들로 용어만 교묘히 바꾸어 공공연하게 선행 학습을 유도하는 교육업체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개학하기 전에 1년 치는 미리 봐야지요’, ‘당연히 중학생 때 고등학교 과정을 다 떼고 가는 것이 필수입니다.’ 라는 말들로, 앞선 1~2년 치의 공부를 미리 해놓지 않으면 절대로 학교 등수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식의 ‘겁주기 마케팅’ 또한 성황이다.
진도는 나갔지만 개념까지 이해했을까?
목표 진도를 완료하기 위한 시간표 구성 또한 놀랍다. 월/수/금 수학 5-6시간 연강, 화/목/토 영어 4-5시간 수업. 심지어 겨울방학을 이용한 두 달 짜리 ‘캠프형(숙박) 학습 프로그램’까지 생기고 있다. 아이들을 통제한 채로 하루에 한 과목만 적게는 4시간에서 많게는 8시간까지 공부한다. 특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도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수학과목의 경우에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속도만을’ 강조한 이런 학습들의 결과는 어떨까? 아이의 역량에 관계없이 겨울 방학 두 달 안에 수학 개념서 4권 끝내기? 물론 책은 끝난다. 하지만 ‘강사가 끝낸 것’이다. 아이는 책을 끝내지 못했다. 단지 설명을 해주는 강사의 옆에 ‘존재’했을 뿐이다. 아이는 책의 개념들을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처음에는 왠지 모를 ‘성취감’에 빠진다. 어찌 되었든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금세 시련은 다가온다. 바로 학기가 시작하고 보게 되는 첫 중간고사 때이다.
학습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다
겨울방학 때 했던 나름의 노력들이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애초에 진행했던 학습의 방법이 ‘훑어보기’ 방식의 학습이었기 때문이다. 개념들을 쓱 훑어보면 뭔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되지만, 애석하게도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생의 이해속도와는 별개의, 학생이 따라갈 수 없었던 ‘무리한 속도’의 수업이었던 것이 노력이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이다. 아이들은 각자의 역량과 주어진 조건이 다르다. 하지만 이 조건들을 모두 무시한 채로 ‘무조건’적인, 일방적인 학습 속도를 들이미는 것은 절대로 옳지 않다. 이것은 무의미한 속도경쟁이며 레이싱에 불과하다. 공부는 결승선에 ‘누가 먼저 들어왔나’를 성공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결승선에 도착할 때까지의 ‘모든 단계를 모두 다 이해했는가?’가 그 기준이 된다. 즉, 진도만 먼저 끝내는 것은 공부의 성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선행학습을 강조하는 곳은 많다. 그리고 그 논리에 동의하거나 혹 하는 학부모들도 그만큼 많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무엇을 위한 선행인가? 그리고 누구를 위한 선행인가? 아이는 중간에서 헐떡이고 있는데 ‘빠르게 더 빠르게’라는 말로, 따라가지도 못하는 과정을 더욱 채찍질하고 지속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는 지금까지의 학습방식을 돌아볼 때이다. 강사를 위한 학습속도, 학부모의 대리만족을 위한 학습속도는 아이에게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 아이들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지금 상태에 대한 현실 인식을 하지 못한다. 결국 자녀를 위한 부모님의 올바른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것이다.
후행학습의 중요성 무시 못해
예비고1 학생들을 기준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의 목차를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중학교 때 배웠던 과정들과 한 번 비교를 해보자. 생각보다도 많은 부분이 일치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의 깊이나 난이도는 물론 달라지겠지만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연계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정리해보면 고등학교 1학년에서는 아예 처음 접하는 ‘새로운’ 내용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배웠던 내용들을 심화한,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중학교 전 과정을 돌아보는 후행학습에 주목해야 한다. 중학교 과정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숙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교의 학습내용이 온전히 이해될 리는 없다. 지금 알아야 할 내용들, 이전 학년의 내용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채로 앞선 학년의 내용만을 공부한다면 결국 그렇게 원하던 ‘진도’에 제동이 걸린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며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서 텅 비어있는 학습부분들을 찾아가며 다시 공부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학습한 아이들보다 속도가 2-3배 느려진 것이다.
여기에 강사의 이야기를 귀로만 듣고 ‘손’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눈으로만 대충 훑어보는 학생의 학습 태도까지 더해진다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결국 비싼 돈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사실 돈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이미 흘러버렸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방학이 무의미하게 흘러갔다면, 다음 해에 학습력은 분명 쉽게 채워지기 힘들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겨울방학 시기. 어떤 과목의 어떤 진도이든, 학생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속도에만 집중하여 공부하는 모습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진도에만 욕심을 내는 것보다는 진짜 머리에 남는 공부를 하며 신학기를 맞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학생의 실력 향상과 성취감은 당연히 따라올 것이다. 의미 없는 레이싱은 이제 끝났다.
목동 에듀플렉스
서보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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