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수학
김통영 원장
어릴수록 수학을 좋아한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다. 초등학생 때가 가장 많고 중학생도 적지 않은 비율이 수학을 좋아한다고 느낀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목전에 둔 고등학생은 수학을 대부분 싫어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화를 하다보면 이상하게 매끄럽지 않은 진행이 되는 경우들이 많다. 내가 “좋다”라고 하는 것과 상대가 “좋다”라고 하는 것이 다를 때가 그 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같은 표현과 단어를 사용하지만 그 단어의 의미가 서로 통일되어 사용되지 못하면 그 자체로 대화는 헛도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비교적 어린 학생들은 수학을 좋아한다고 하는 비율이 높을까? 그들이 쓰는 “좋다”는 표현은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결국 “쉽다”라는 표현의 다른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중학생의 시험은 몇 개 안되는 공식을 주로 시험기간에만 잠깐 공부해도 90점 이상의 성적을 얻는 경우가 흔하다. 조금만 공부해도 시험성적이 좋으니 당연히 좋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예비고1 학생의 학부모를 상담하다 보면 “우리 애는 수학을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은 고등학교 입학 후 대부분 매우 저조한 결과를 보인다. 고등학생으로서 필요한 노력의 양에는 관심을 갖지 않은 채 중학교 때의 경험대로 수학공부를 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수준에서는 요구되는 공부의 양이 그 전까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이과를 선택하면 특히 더 그런데 수학을 그냥 “좋다”라고 했던 아이들은 그 정도의 준비를 해온 적이 없기 때문에 이내 수학이 쉽지 않다고 느끼고 드디어 수학을 싫어한다.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수학이 진짜 좋다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면 마치 여학생들이 선망하는 남자 아이돌을 대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친 상황에서도 수학을 공부하면 너무 즐겁고 새벽에 공부를 할지라도 수학만 공부하면 깰 수 있을 수준이다. 이게 “수학을 좋아한다.”의 고등학생판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아이들 스스로 고학년이 될수록 얼마만큼의 노력이 더 필요한 지 깨닫기 힘들다. 이것을 깨우치게 하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더욱 슬픈건 그 역할을 가장 잘 수행해야 할 부모들이 지금 저학년인 아이가 그토록 중요하다는 수학을 좋아한다 하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미래를 대비시키는데 소홀하다는 것이다.
어른에 가까운 나이가 될수록 더 많은 노력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진리다.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얘기하기 전에 과연 그 목표를 가져도 될 만큼의 수준인지, 걸맞은 노력을 하고 있는가를 너무 늦지 않게 스스로 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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