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 현상’과 생물들의 구조, 특성, 기능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자체만으로 흥미가 있지만, 사실 ‘쓸모’도 많은 학문이다. 최근에 역분화 줄기세포, 유전자 가위, 합성 생물학 등 최신 과학동향에 대한 소식을 접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향후 인류의 삶을 크게 바꿔 놓을 것은 대부분 생명과학의 지식을 이용한 생명공학 기술들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흥미로운 생명과학이 왜 교육과정에만 들어오면 단순히 외울 게 많고 점수 따기 까다로운 과목이 되었을까? 사실 이것은 생명과학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 수능과 평가원 모의고사를 풀고 있자면, 대체 이런 문제들이 생명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는 걸까하는 자괴감이 든다. 물론 이런 ‘수능형’ 문제들 중 대부분은 정확한 생명과학의 개념을 알고 있고, 약간의 추론 능력만 있다면 모두 풀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가끔씩 야속할 정도로 학생들을 속이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현 교육과정의 이런 성격 때문에 흥미로운 과목도 재미없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현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치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재미없는 생명과학 공부를 흥미를 가지고 몰입할 수 있을까? 학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고, 과목을 바라보는 시각만 바꿔도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따라서 공부 능률도 오르지 않을까?
필자가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내신, 영재고/과고 대비 수업, 수능까지 학생들에게 생명과학을 가르치면서 강조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생물은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다루는 대상을 훨씬 뛰어넘는 복잡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생물의 구성체계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생물을 이루는 분자들이 가장 처음 세포를 이루고,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이 기관, 기관이 모여 하나의 개체가 된다는 것은 생명과학의 기본 개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로 넘어가면서 이전 단계에서 볼 수 없었던 특성들이 새롭게 생겨나, 생물을 훨씬 더 복잡하게 만들고, 그래서 생물을 탐구하기란 쉽지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둘째, 생명과학은 두 가지 큰 뿌리에서 시작하는 학문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똑같이 생물을 탐구하는 학문이지만, 한쪽은 고대 인류부터 시작되어 다양한 생물을 수집하고 기록하는 박물학을 지나 생물이 가지는 공통성과 다양성의 규칙을 찾고, 직접 자연 속에 살아가는 생물을 관찰하며 그들의 삶을 연구하는 성격을 지닌다. 즉, 다윈이나 구달같이 직접 발로 뛰며 탐구하는 거시 생물학(생태학, 진화생물학)이다.
그리고 다른 한쪽은 생물을 이루는 요소 즉, 유전자나 세포 수준을 잘 이해하면 상위 단계의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에 입각하여 생명 현상의 매커니즘을 구체적으로 밝혀내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이나 의학의 발전을 일군 미시 생물학(세포학, 생화학, 분자 생물학)이다. 두 영역은 서로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발전해오면서도 생물이라는 같은 연구 대상을 공유하기 때문에 최근에는 하나의 생명과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밀접하게 연관을 맺고 있다.
고등학교 생명과학Ⅰ과 Ⅱ에서는 미시 생물학과 거시 생물학이 균형 있게 배치되어 있다. 교과과정상 이러한 단원들이 왜 이렇게 배치가 되어있는지를 이해한다면, 배우면서도 다른 파트의 개념들과 연결해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생명과학이라는 매력적인 과학을 정복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길 지도 모른다. 필자도 고등학생 때, 생명과학에 대한 흥미를 깨워주신 은사님을 만나면서 전공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생명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정확한 지식과 과목에 대한 흥미를 동시에 일깨워줄 수 있는 훌륭한 선생님을 만나길 바란다.
손영기
닥터 사이언스 아카데미 생명과학 강사
문의 042-485-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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