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쥐고 있는 스나이퍼 총 조준경을 통해 보이는 타깃(사람들)의 모습은 참 다양했어요. 누군가에서 온 듯한 편지를 읽고 있는 사람.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 먼산을 바라보는 사람.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 방아쇠에 걸려 있는 나의 검지를 차마 당기지 못하고 편지를 다 읽을 때 까지 기다릴까 밥을 다 먹을 때 까지 기다릴까.. 몇 초의 갈등을 뒤로 한 채 결국 ‘빵’ 한발에 치솟는 피를 보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그리곤 말했다. 시간이 갈수록 드는 죄책감으로 인해 심한 우울증과 총소리가 들릴 때 마다 느끼는 견딜 수 없는 공포감과 심각한 불면증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거의 매일 잘 때마다 꾸는 악몽. 자신이 죽인 사람들이 피 묻은 얼굴로 나타나 식은땀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일어난다고. 조준경에 보였을 사람들의 모습. 아마도 이 저격수의 뇌리에는 다른 사람의 남편, 아버지, 아들, 형제일 수 있는 사람들의 목숨을 자신의 손가락 하나로 죽여야 하는 그 무거운 고민들이 지나 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 작은 뇌라는 단백질 덩어리 안에 펼쳐지는 수많은 스토리들. 외계인 언어로 말을 하는 어느 학자, 매일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는 환청과 싸우는 소녀, 파키슨 병 약물로 인해 발현된 조현증 환자, 병실 한가운데 천장을 보고 몇 시간을 서있는 긴장성 분혈증 환자, 몇 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정신병이라는 변명으로 무죄를 꾀하는 죄수. 어찌 보면 영화 보다 더 영화 같은 이들의 인생 스토리를 들으러 나를 매일 아침 병원으로 발을 향하는 지도 모르겠다.
정신과학 쪽으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상담을 하다 보면 티비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단지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의대를 가고 싶다는 학생들을 많이 만나 보았다.
하지만 화려한 타이틀 뒤에 숨겨져 있는 애매하고 모호한 정신세계에 대한 좌절감도 알려 주고 싶다. 피검사나 엑스레이 같은 판독으로 찾아 낼 수 없는 이 모호한 세계를. 그들의 스토리를 내 식구의 이야기처럼 들어줄 사람 그리고 그 들의 손을 어루 만져 줄 수 있는 후배들이 많이 나 올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Dr. Yoo내과 레지던트
클라우드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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