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왕 문화유적을 찾아가다…이희승박사 생가]

이제는 사라질 한글 사랑 국문학자 이희승 박사 생가

신현주 리포터 2017-06-14

우리나라의 문화재나 역사유적이고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이나 경주, 부여 등의 역사도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잘 살펴보면 역사 유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찾았다. 우리주변의 지나치기 쉬운 의왕시 문화유적을 만나보자.


이희승생가

포일동 양지편 마을에서 태어난 이희승박사
의왕시는 한글학자인 이희승박사가 태어난 곳으로 의왕시는 이희승 박사를 기리기 위해 갈미 한글공원을 조성하는 등 한글사랑을 실천하고 있기도 하다. 말로만 들었던 이희승 생가. 의왕시 홈페이지에서 주소를 확인하고 포일동 양지편 마을로 차를 몰았다. 한창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의왕포일지구 숲속마을과 청계지구가 들어선 아파트 단지들 사이 좁은 골목의 양지편 마을. 이제는 이곳도 곳곳에 새로 지은 빌라와 건물들이 곳곳에 들어서고 있었다. 이희승박사 생가임을 알 수 있는 표지판이나 안내문 하나 없이 찾으려니 홈페이지에서 봤던 사진에 의존하는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좁은 골목 새로 지은 건물들 사이에 파란지붕과 하얀 벽면이 눈에 띄는 낡은 건물이 있어 바로 알아 볼 수 있었다. 홈페이지의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이곳이 이희승박사 생가라고는 생각지도 못 할 일이다.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근처 주민 한 분이 “이희승 박사 생가인 것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며 “이제 이 집도 곧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고 알려준다. 하마터면 이희승박사 생가를 확인도 못할 뻔 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나마 생가를 확인할 수 있어 다행이다는 마음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의왕시 문화예술관광팀  김병창 씨는 “이희승 생가는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아닌 사유지로, 주인의 의사에 따라 헐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이후에라도 표지판이나 안내문 등 이희승생가가 있던 곳임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겠다”고 전했다.


한글둘레길

한글문법의 기틀을 잡은 국문학자 이희승박사
1896년 출생하여 1989년 작고한 이희승 박사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양정의숙, 연희전문학교 등에서 수학했으며, 193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어문학과를 졸업하였고, 1932년 <신동아>11월호에 시 ‘무덤’을 발표하여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박꽃, 심장의 파편 등 다수의 시집을 내었으며, 수필집으로는 벙어리 냉가슴, 딸깍발이 등 다수가 있다. 하지만 이희승 박사는 시인이나 수필가로서 보다는 국어국문학자로서의 더 알려져 있다.
이희승박사는 경성제국대학을 졸업한 1930년에 조선어학회에 입회하여 간사와 간사장을 역임하면서, 1933년의 ‘한글맞춤법통일안’(1933)과 ‘표준어사정’(1937) 사업에 깊게 관여하였고, 1930년 경성사범학교 교유(敎諭),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1942년에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검거되어 3년 동안 복역하였다. 광복 이후에는 1945년 12월에 경성대학 법문학부 교수로 취임한 뒤, 1946년 10월에는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 부원장,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장 등을 역임했고 1961년 9월 정년퇴임과 동시에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이후 1965년 대구대학 대학원장을 거쳐 1966년부터 1969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부터 1981년까지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1969년부터 19년 동안 한국어문교육연구회 회장으로서 국한문혼용을 주장하였고, 3.15 부정선거규탄 대학교수단 데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했으며, 1963년에서 1965년까지 동아일보사 사장을 역임하고, 1968년부터 현정회(顯正會) 이사장으로서 단군 존숭사업을 벌이는 등 여러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희승 박사의 국어학 연구에 있어 주요 저서로는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원리를 해설한 <한글맞춤법강의>(1946), 국어학 연구 논문집 <조선어학논고>(1947), 기존의 국어학 연구를 종합하면서 이후 국어학 연구의 방향을 제시한<국어학개설>(1955) 등이 있으며, 특히 <국어학개설>은 이후 국어학계에 많은 영향을 준 명저로 평가된다. <역대조선문화정화>(1938), <조선문학연구초>(1946) 등의 저서로 대표되는 고전문학 연구 업적도 찾을 수 있다. 또한 이희승의 국어문법체계는 최현배의 문법체계와 함께, 우리나라 문법체계 연구의 큰 줄기를 형성했다고 평가된다. 그 외에도 다수의 교과서와 사전을 편찬하였고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57년 학술원공로상, 1960년 서울시교육공로상,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1978년 인촌문화상, 1989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받았다.


갈미한글공원

이희승박사의 한글사랑 뜻 기린 갈미한글공원
양지편 마을에서 이희승 생가를 둘러보고 백운호수를 끼고 한글둘레길을 거쳐 갈미한글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는 길. 갈미한글공원은 일석 이희승 박사의 한글사랑 정신을 살리고자 ‘한글’을 주제로 조성된 공원으로 한글 관련된 각종 조형물과 조각이 전시 되어 있고 간단한 공연을 할 수 있는 야외 공연무대, 그리고 널찍한 잔디밭이 있다. 여기에 한글둘레길이라는 명칭으로 계원예술대학교에서 갈미한글공원을 거쳐 백운호수까지 이어지는 곳곳에 한글을 형상화한 다양한 조형물을 만날 수 있다. 이희승 생가부터 갈미한글공원까지 오면서 세계사의 가장 위대한 발명이자 우리의 자랑인 ‘한글’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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