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미우나 고우나 아이들만이 희망이다

지역내일 2017-04-21

학교나 선생님에게 불만이 없는 학생들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교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학교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학생들이다.
나의 교직 생활이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다
‘중2 병’이라는 불꽃같은 사춘기를 보내고 입학하는 17세. 내가 우리 학교의 여학생들, 그리고 이들과 3년의 시간을 보낸다. 이 아이들을 만나 가르칠 때의 마음은 학교에 처음 부임한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아니,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고 있다. 다만, 세상이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아이들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매년 달라지고, 나도 그런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조금씩 아이들과의 생활이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교직생활을 10쯤 하다보면 학교에 나오기 싫고, 교실에 들어가기 싫고, 교직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그것이 학교라는 체제에서 오는 실망감인지, 아이들에 대한 실망감인지,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생기는 매너리즘인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선생님들도 그랬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나에게도 10년차를 지나서 그런 시기가 왔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교실 뒤편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냥 바라보는 내게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다던 아이들이 그해에는 왜 우리를 감시하느냐며 교실 벽에 낙서를 남겼다.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그해에는 유난히 그런 아이들이 많다고 느껴졌고 학년을 마칠 즈음엔 내년에도 또 이러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1학년 담임이었던 이듬해 나는 2학년 담임이 되었다. 구구절절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이 힘든 한해가 더해져 학교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힘든 2년을 보내며 교직에 대한 회의도 들고, ‘그동안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해왔던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고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내 스스로를 바라보던 그해에도 새로운 한해는 시작되어 1학년 담임으로 새로운 아이들을 만났다. 새로운 아이들을 맞는 기대감보다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상태로 아이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첫 번째 만남에서 10여 년 전 서문여고에 처음 부임했을 때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해 하며 나를 바라보던 초롱초롱한 눈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이게 어찌된 일일까,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나는 경계심을 조금 풀고 이전에 내가 하던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조금 씩 꺼내 놓으며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아이들을  알아가고, 아이들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더 이상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 싫지 않았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며 지난 2년간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는 왜 불만을 토로하는 소수의 아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었을까? 그렇지 않았던 더 많은 아이들이 있었는데….
나에게 교직을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 1학년 12반과의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체육대회를 하며 이기는 것보다는 즐겁게 참여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내 얘기를 굳게 믿고, 경기에 지고 자리를 떠나면서 우리를 이긴 상대팀(반)에 ‘너희가 꼭 우승해라’고 이야기 하고 자리에 돌아와 즐겁게 응원하는 아이들. 전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 갑자기 비가 와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게 되었는데 ‘죽녹원에 비가오니 더 멋있어요’라고 얘기하고 급하게 우비를 가져온 가이드에게 연신 고맙다며 센스있는 멋쟁이라 얘기해주는 아이들.
가족만 초대가 가능할 뿐 외부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학교 축제에 대해 그전에는 재미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었지만, 번잡스럽지 않고 오붓하게 친구들이 준비한 것을 구경하고 축하해줄 수 있어서 좋다는 아이들. 이 아이들의 긍정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던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이들이었다.

여전히 희망은 아이들이다
그 아이들 중 2명은 3학년이 되어서 또 나를 담임으로 만났고, 다른 아이들도 서문여고에서 3년을 보내고 졸업한지도 3년의 시간이 또 지났다. 그때의 그 아이들이 학교를 찾아올 때, 카톡에 ‘저 이번에도 장학금 받았어요, 유럽여행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친구들 만났어요…’ 소식을 남길 때마다 즐거운 추억에 빠지곤 한다.
올해로 5년 연속으로 3학년 담임을 하다 보니 1학년이나 2학년 담임을 할 때 보다는 여러모로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도 내가 힘든 것이 아이들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대부분 힘든 나의 학교생활에 활력이 되고 위로가 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때처럼 착하고, 예쁘고, 긍정적인 아이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잊고 있었던 것, 앞으로는 절대로 잊지 않으려는 나의 오랜 은사님의 말씀이 있다. ‘학교나 선생님에게 불만이 없는 학생들은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래도 교사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학교에 희망을 심어주는 것도 학생들이다. 그러니 교사가 될 너희들은 학생들을 가장 소중하게 여겨라!’ 새삼 기억나는 은사님의 말씀이다.

서문여고 이효종 교사(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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