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문화재나 역사유적이고 하면 우선 생각나는 것이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이나 경주, 부여 등의 역사도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도 잘 살펴보면 역사 유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운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찾았다. 우리주변의 지나치기 쉬운 문화유적. 의왕시 문화유적을 만나보자.
사도세자 온양온천 행차 시 지나간 곳 기념
효심 가득한 정조대왕은 1789년(정조13) 양주 배봉산에서 수원 화성으로 사도세자의 묘를 이장하면서 행차의 편의를 위해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요소와 경유지마다 행궁을 세웠다. 그중의 하나가 사근행궁으로 의왕시 (구)고천주민센터(의왕시 사그내2길 14) 주변이다. 1789년 10월6일 사도세자 묘역을 천봉할 때 사근행궁을 지나 화성 현륭원으로 향했다. 이 날을 기념하여 의왕시에서는 ‘의왕시민의 날’을 10월 6일로 정하고 기념하고 있다.
행궁이란 국왕이 지방에 거둥할 때 임시로 머물던 별궁으로 1790년(정조 14)에서 1795년에 걸쳐 과천행궁, 사근행궁, 시흥행궁, 안양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 등 모두 6개의 행궁이 설치되었다. 사근행궁은 1760년(영조 36) 사도세자가 온양으로 행차할 때도 지나간 곳으로 정조는 사도세자가 잠시 쉬어간 곳을 기념하여 ‘사근참행궁’으로 이름 짓고 마중 나온 노인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게 하였다고 한다. 행궁이 들어서기 전부터 도성에서 삼남으로 내려가는 교통의 요지였음을 알 수 있다.
정조는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이곳에 들렀는데 특히 1795년 2월 10일과 15일에는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함께 들러 수라(식사)를 들기도 했다. 세계문화유산인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의하면 정조의 어머니이자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기념해 1795년(정조 19) 윤2월 9일부터 16일까지 노량진 앞 한강에 배들을 잇대어 다리를 놓은 주교를 설치하고 100리 길을 행행하여 화성행궁 에서 8일 동안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참여 인원이 6000여명에 달했다고 하니 그 규모가 상상이 간다.
의왕시 유일의 독립만세 운동지
정조대왕이 사도세자의 화성 능 행차 시 들러 가던 사근행궁. 현재 사근행궁 터에는 1989년 백운회에서 정조의 효행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서 세운 기념비만 서 있고 관련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남한지>에 의하면 행궁은 본채인 정당과 별채인 별궁으로 구성되었으며, 본채 좌우에 창고가 하나씩 있었다고 한다. 일제가 강제합병 한 뒤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광주군 의곡면과 왕륜면을 통합하며 ‘의왕면’이라 칭하면서 ‘의왕’이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사근행궁은 일제 강점기 의왕면사무소로 사용되다 1937년 매각되면서 철거되었다. 사근행궁터는 1919년 3월31일 밤 의왕지역 800여 주민들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사근행궁터는 오랫동안 의왕의 중심지로 의왕시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다만 지금은 사근행궁이 있던 자리임을 나타내는 기념비만 서있는 것이 못내 아쉽다.
사근행궁터는 삼남길 경유지 중 한 곳이다. 삼남길은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이 한양과 삼남지방(충청·전라·경상도)을 이어 걸어 다녔던 1,000리 달하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옛길로 과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길이다. 삼남길은 한양에서 과천 의왕 수원 화성을 거쳐 전라도 광주 해남까지 약 392km구간으로 삼남길 의왕구간은 백운호수 입구에서 임영대군 묘역, 오매기 마을, 사근행궁터, 골사그내, 지지대비로 이어진다. 사근행궁터와 임영대군 묘역에는 삼남길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따뜻한 봄 날 삼남길을 따라 걸으며 사근행궁터에 들러 정조대왕의 효심가득한 원행길을 그려보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선조들의 넋을 기리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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