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초, 눈의 도시 삿포로를 다녀왔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만 보이는 서울의 겨울 풍경과는 확실히 다를 것이라는 부푼 기대를 안고 신치토세 공항으로 3시간을 날아갔다. 여러 날 동안 켜켜이 쌓여 어른 허리춤만큼 쌓인 눈 더미는 길 가에 또 하나의 담장을 이루었고, 밟을 때 나는 사각사각 소리와 보송보송, 보드라운 눈은 이국적인 겨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도깨비 온천 마을, 노보리베츠
삿포로에서 1시간 30분가량 기차를 타고 가면 닿을 수 있는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온천마을이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도깨비(오니)는 이 마을의 상징으로 일본의 도깨비 설화에 나오는 오니가 이곳 홋카이도 지방의 원주민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노보리베츠 온천이 특별한 이유는 9종류의 온천수 때문. 그 중에서도 탁한 우유 빛깔에 특유의 향이 있는 유황온천이 대표적으로 마을 곳곳의 작은 강과 하수구에서도 유황의 수증기와 향이 났다. 온천과 함께 일본 전통의상인 유카타를 입고, 깔끔하고 정성스럽게 차려진 일본식 식사와 다다미방에서 하룻밤 자는 료칸 체험도 특별했다. 무엇보다 식사와 온천을 마치고 오면 이불이 가지런히 펴져 있어 잠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었다.
가스등, 운하, 낭만의 절정, 오타루
영화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오타루의 첫 인상은 ‘동화 속 작은 마을’이었다. 높은 빌딩이나 아파트 같은 건물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작고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길가에는 운치 있는 가스등이 오후 4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지는 거리를 비추는 동화 속 세상 같았다. 또 하나, 이곳에서는 비둘기가 아닌 까마귀들이 여기 저기 앉아있어 더욱 이국적이었다. 이번 여행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이기도 했다.
JR선 ‘미나미 오타루’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걷다보면 10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의 ‘오르골당’에 닿을 수 있다. 1층과 2층으로 이루어진 오르골당에서 15,000개의 오르골이 전시, 판매되고 있었다. 오타루가 유리공예가 발달된 곳이라 섬세한 작업으로 만들어진 유리제품에서부터 인형, 장난감 등 다양한 오르골 제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오르골 당을 나와 상점들이 있는 곳을 걷다보면 곳곳에 아이스크림 가게를 볼 수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방목으로 소를 키우기 때문에 우유가 훨씬 고소하고 부드럽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유제품과 아이스크림은 한 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오랫동안 잊지 못한다고 한다. 오타루에서 가장 운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운하’일 것이다. 폭인 넓지 않은 운하로 양쪽에 산책로가 있어 하얀 눈과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특히 밤에 보이는 야경은 색색의 조명과 더해져 더욱 낭만적이었다.
맛있는 수프카레와 풍경의 마침표
낮에도 영하 10도를 훌쩍 넘는 삿포로의 날씨는 그저 물리적인 추위였다. 삿포로는 따뜻했고 또 고요했고, 맛있었다. 맛집을 굳이 찾지 않아도 아무 곳에 들러 먹는 라멘, 규동도 입에 착 감겼다. 그 중에서도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수프카레’는 단연코 최고였다. 토마토 수프에 카레를 섞은 국물이 있는 수프식 카레로 그 위에 취향대로 각종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음식으로 추운 삿포로 날씨에 얼어붙은 몸과 입맛까지 한 번에 녹여버렸다. 삿포로 시내를 한 눈에 보고 싶어 올라간 ‘TV탑’전망대와 ‘노르베사 백화점의 관람차’는 오도리 공원과 멀리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는 모습, 삿포로 일대를 마치 파노라마 뷰를 보듯 적당했다.
겨울 풍경의 절정을 보고 싶어 찾아간 곳은 삿포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비에이. 온통 눈으로 덮인 작고 한적한 마을로 여름에는 라벤더가 자라 온통 보랏빛으로 물든다고 한다. 사방을 둘러봐도 온통 하얀 눈, 그 가운데 서 있는 나무 한그루는 그야말로 엽서 같은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하얀 눈과 얼음 사이로 가느다란 수염처럼 흰 물줄기와 푸른빛을 내고 있던 ‘흰 수염 폭포’도 상상하기 힘든 겨울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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