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상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사건 이후 우리 사회는 이른바 ‘화학물질 포비아(phobia)’로 불리는 불안 증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치약부터 섬유유연제, 화장품까지 화학물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의(衣)와 주(住)를 차치하더라도 ‘식(食)’만은 화학첨가물로부터 지키자는 움직임이 사회 전반에 일고 있다. 일상에서 가장 쉽게 화학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주방, 그만큼 화학물질이 많기 때문이다. ‘화학첨가물 ZERO’ 음식을 만드는 쉐프의 무모한 도전이 지금 대전의 작은 가게에서 진행 중이다.
“알면 먹을 수 없죠”, 몰랐던 식재료 속 441가지 화학첨가물
음식과 몸에 좋은 약은 한 끗 차이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간편하다, 혹은 맛있다는 이유로 우리는 잠시 건강함과 타협을 시도한다. 반찬가게에서 손쉽게 구입한 맛나 보이는 반찬속에 혹은 무심코 사용하는 조미료 속에 들어 있는 화학첨가물은 우리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식약처가 발행한 ‘식품첨가물 공전’에 의하면 현재 화학적합성품은 441품목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식재료 속엔 441가지 화학첨가물이 합법적으로 들어가 있다는 소리다. 당장은 아니지만, 차곡차곡 쌓여 가족의 건강을 해칠 화학첨가물. 이제 눈앞의 저것이 음식인지, 아니면 음식을 가장한 화학첨가물의 집합체인지 의심해야 할 대목이다.
“가장 많이 놀라워하죠, 화학첨가물이 그렇게 식탁에 많이 올라간다는 것을. 합성 조미료야 말할 것도 없고 아이들이 즐겨 먹는 소스 종류에도 이렇게 많은 화학첨가물이 포함된 것을 알고 어떤 분은 화를 내기도 해요. 도대체 뭘 사서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느냐고.(웃음) 먹거리를 불신하는 시각에 씁쓸한 마음 반, 더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감 반에 어깨가 무겁죠.”
화학첨가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쉐프에게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다. 이유식을 만들어 본 엄마라면 안다. 건강한 세 끼를 위해 공들여 할 고단한 과정이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한 끼 식사도 아닌 끼니마다 식탁에 오를 반찬을 만든다면 수고로움은 배가 된다. 그리고 밥과 먹을 찬이니 맛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화학첨가물 FREE ZONE’을 선언한 쉐프의 반찬가게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학첨가물 대신 효모로 건강과 풍미 잡아
박형구(점장, 28), 정승우(쉐프, 28). 고집 좀 있어 보이는 두 쉐프가 의기투합하여 ‘효모로 만든 찬’을 연 이유는 먹거리 불신의 시대에 대한 일종의 도전장이다.
국내에서 외식업을 전공하고 유학하며 견문을 넓힌 패기 넘치는 두 쉐프에게 ‘건강한 먹거리’란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였다. 요리를 전공한 만큼 누구보다 시판하는 마법 소스의 위력을 잘 아는 그들이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돌고 돌아 내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하는 식생활의 악순환이 될 것이란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해서 새벽부터 발로 뛰고 당일 사용할 소스 등을 하루 단위로 직접 만든다. 샐러드에 뿌릴 드레싱, 당일 사용할 두부, 심지어 조림용 어묵까지 이 둘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재료가 없다. 이렇게 조리한 국과 찌개, 조림과 무침 등 100여 가지의 반찬을 백화점 식료품 매장의 프리미엄 관을 연상하게 꾸민 매장에 진열한다. 오전 8시 문을 열어 오후 9시까지 음식을 판매하지만 호응이 높은 반찬은 곧 동이 나기 때문에 전화로 미리 구매 리스트를 일러주는 소비자가 많다.
그리 크지 않은, 개점한 지 1년밖에 안 된 반찬가게로는 보기 드문 판매 실적이다.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라면 너도나도 건강함을 주장하지만, ‘어르신이 먹고 나도 속이 편안했다’, ‘아토피인 아이에게 먹여도 이상 반응이 없었다’며 반색하는 단골들의 좋은 평점은 어느 곳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인기에 대해 두 쉐프는 “화학첨가물을 빼고 건강함을 살린 대신 효모추출물을 사용한 천연첨가물로 본 재료의 맛을 풍성하게 살린 것이 비결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한다.
안전과 맛뿐 아니라 착한 가격도 장점
아삭하고 담백한 나물 무침과 개운하고 맛이 깊은 각종 탕류, 입맛을 돋워주는 산뜻한 드레싱을 곁들인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는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안심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수제 양념을 사용했지만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남부럽지 않은 산채 비빔밥을 먹을 정도로 가격도 적당하다.
중간 유통 과정의 생략도 착한 가격 책정에 한몫했지만, 그보다 깐깐한 두 쉐프가 몸으로 뛴 덕분이다. 몸은 고단하지만, 그보다 더 큰 보람으로 주방 불을 끈다는 박형구‧정승우 쉐프. 그래서 핸드블렌더도 아닌 거품기로 마요네즈를 소량씩 만들고, 새벽부터 콩을 갈아 저염도 간수로 손두부를 만드는 두 쉐프의 무모한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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