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중앙상담센터 심리상담연구소 행복나무
이동섭 전문상담사
12살에 외조모가 돌아가시고,‘엄마 없이 큰 아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에게 엄격했고, 완벽하려 했던 나의 어머니는 딸인 내겐 유독 더 엄격하셨고, 통제가 강한 양육을 하셨다. 나는 그렇게 양육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어느 틈에 나는 그 방식을 따라, 자녀의 삶을 통제했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 나름으론 의미가 있고, 소중하지만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머니의 양육방식은 내게 많은 영향력을 주었을 것이다. 창피하지만 이런 내 모습 탓에 공격성 한 번 제대로 표현 못하고 성장한 딸이 실패를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다.
6년이 지났음에도, 왜 하필이면 입시가 겨울철인지, 잔인하다 싶을 만큼 가슴 철렁한 기억이다. 지원한 대학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는 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정신이 나간 듯 멍한 딸의 얼굴을 본 그 순간부터 나는 딸의 마음이 어떨까하는 안쓰러움으로 염려에 빠져 가슴앓이가 되었다. 상담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딸의 마음을 헤아린답시고 위로 아닌 위로로 그간 노력했던 딸의 수고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했을지도 모르고, 지지 아닌 지지를 한답시고 실패에 대해 회피하도록 함부로 침범했을지도 모르겠다.“그깟 일로 뭘 그래. 자~ 밥 먹고 힘내보자.”고 말했을지도 모르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면 한 순간에 “그러게~ 좀 더 열심히 하지 그랬어?”라며, 딸의 가슴을 몇 차례 더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예상하지 못했던 불합격으로 힘들었던 딸. 그러나 이 일로 인해 엄마인 내가 겪어야 할 고통과 불안도 만만치 않았다. 딸이 스스로 마음을 챙기고 결정하기까지, 내 방식으로 위로하지 않고, 내 언어로 말하지 않으면서 견디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딸의 변화를 지켜보다가 불안이 올라오면 익숙하게 몸에 밴, 통제하고 간섭하고 싶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했고, 이 시기를 견딜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엄마인 내가 아무리 아파도 딸이 누구보다 아픈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어김없이 6년 전 그 날의 딸의 얼굴과 초조하고, 불안하고, 속이 애 닳는 간절함이 가득한 부모의 마음이 느껴진다. 발달과정상 반드시 거쳐야 할 전환의 시기에 실패를 딛고 일어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자녀의 아픔 중엔 자녀의 몫이 있다. 상담사로서 일치성을 가지면서, 부모이기에 자녀의 결정을 신뢰하며, 일어 설 수 있다는 확신으로 기다려줌이 필요한 것을 알았고, 그 방법이 가장 자녀를 인격적으로 대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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