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독해 수업시간에 흥미로운 한 실험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세 개의 양동이에 각각 찬물, 뜨거운 물, 그리고 미지근한 물을 준비한 다음, 오른손은 찬물에 왼손은 뜨거운 물에 각각 담그고 일정시간이 지난 다음 양손을 모두 미지근한 물속에 넣으면, 재미있게도 같은 사람의 양손이 같은 온도의 물속에 담겨 있지만, 찬물에서 나온 오른손은 그 미지근한 물을 뜨겁다고 느끼지만, 뜨거운 물에 익숙했던 왼손은 그 미지근한 물을 몹시 차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즉 현재의 상황인식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이전의 조건에 기초한 주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실험의 결과이다.
2017학년도 수능에 대한 총평은 대체로 “불수능”이다.
올 한 해 동안 수능출제담당기관에서는 한 차례도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능을 어렵게 출제 하겠다”고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결과는 변별력을 높이는데 지극히 기여(?) 하는 시험을 출제하여, 학생들을 몹시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영어의 경우를 살펴보면 1등급의 등급컷은 94점으로, 표준점수는 133점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대평가로 시행되는 마지막 시험인 이번 시험이 객관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시험이었는지를 살펴보자. 2010년의 이후의 1등급 기준 점수를 살펴보면 2010학년도 92점(표준점수 133점), 2011학년도 90점(표준점수 133), 2012학년도 97점(표준점수 128), 2013학년도 93점(표준점수 134), 2014학년도 93점-영어 B기준 (표준점수 129), 2015학년도 98점(표준점수130), 2016학년도 94점(표준점수 130)으로 7번의 시험 중에서 이번에 치룬 시험보다 등급 컷이 낮거나 같았던 시험이 5차례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번시험의 객관적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왜 올해는 영어에서도 난이도가 높다는 말이 유독 많이 나오는 것일까? 아마도 수험생들의 손을 계속 시원한 물에 담그도록 유도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계속 시원한 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기 때문에 미지근한 물이 뜨겁다고 느껴졌을 것이다. EBS 70%연계 원칙이 적용된 이후로 영어는 EBS 교재에서 보았던 지문이 그대로 출제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2015학년도 입시로 영어를 영어로 학습하기 보다는 EBS 교재의 해설을 암기하는 것이 영어공부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고 말았다. 즉, “수능의 내신화”라는 성과 이루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학습방법에 대한 비판이 일자, 2016학년도 입시에서는 연계지문을 그대로 출제한 것이 아니라 소재연계라는 형식으로 소재는 같으나 내용이 다른 지문을 출제함으로써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말았다. 2015년 6월과 9월 모의평가에서의 1등급 컷은 모두 100이었고 당연히 쉬운 기조의 영어시험을 예고했으나, 실제 2016학년도 수능에서의 1등급은 94점, 만점자의 비율을 0.48%로 결코 쉽지 않은 시험이었다.
내년부터 영어는 절대평가를 실시하게 된다.
절대평가의 기본적인 목적은 별개로 하고 그것이 가지고 올 가장 큰 파급효과를 예측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절대평가는 쉽다”이다. 아주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지만 않는 다면 상위 4%를 1등급으로 분류하는 상대평가보다 90점 이상만 득점하면 1등급을 받는 절대평가에서 1등급이 월등히 많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생각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 바로 그 절대평가는 쉬울 것이라는 예측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바로는 절대평가가 발표되고 나서 상위권부터 하위권에 이르기까지 영어의 학습량은 상당량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내년에 당장 시행되는 수능영어의 절대평가시험이 중학교의 내신같이 쉽게 출제되지 않는 한 모든 수험생이 1등급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올 6월 2학년 모의평가 영어에서의 90점 이상 1등급이 채 6%가 되지 않았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육평가원에서 발표한 ‘2018학년도 수능 영어 절대평가 학습안내’를 살펴보면 평가의 기분의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었지만, 평가내용은 현행 수능영어와 바뀐 것이 전혀 없음을 알 수 있다. 평가항목의 유형과 항목수, 시험시간이 동일할 뿐만 아니라, 예시용으로 보이는 문항의 대다수는 기존 수능기출문제와 평가원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이용해 설명하고 있다.
절대평가의 시험에는 상대평가에서 보다 1등급의 숫자가 더 많아 질 것은 분명할 것이며, 따라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하게 긍정적인 예측과 기대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시원한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가는 미지근한 물도 뜨겁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일산 이안영어학원 이안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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