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로 개발된 평촌과 구도심으로 이루어진 안양, 새로운 아파트가 지어고 오래된 건물이 재건축, 재개발이 되지만 새삼, 과거 안양의 모습은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안양에는 어떤 역사의 발자취가 있을까?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의 안양의 유적에 이어 이번에는 안양의 조선시대 유적을 찾아 조선시대의 안양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삼성산 삼막사는 조선시대 유적의 보고
고려시대 유적인 삼막사 삼층석탑을 보기위해 들렀던 삼막사. 삼막사는 고려시대 유물보다도 조선시대 유물이 더 많았다. 신라 문무왕 때 지어진 삼막사는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무학대사에 의해 한양 남쪽의 비보사찰로 그 역할을 했고, 태종 때에는 대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시 왜구가 침범하여 불을 질렀으나 법당건물이 타지 않아 왜구가 참회하고 떠났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오랜 시간을 역사와 함께한 사찰이라니 삼성산 속의 삼막사에 있는 그 순간 만큼은 과거의 어느 시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잠시 빠져보기도 한다.
삼막사에 들어서면 대웅전 왼편에 ‘삼막사 명부전’이 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명부의 10대왕을 모신 곳으로 명왕전이라고도 하는데, 조선 고종 17년(1880)에 건립되어 1975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기둥위에 결구된 공포는 장식적 요소가 가미된 조선말기의 주심포계형식이며 5량가구의 맞배지붕으로 내부에는 우물천정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문화재 자료 60호로 지정되어 있다.
명부전을 뒤고 하고 삼막사 경내에 예사로와 보이지 않는 비석이 눈에 띈다. 이 비석은 삼막사 사적비로, 비문은 마모가 심하여 자세한 판독은 어려우나 조선 숙종 33년에 건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사적비의 비갓은 팔작지붕형이고 지대석은 땅에 묻혀 있다. 유형문화재 125호다.
사적비 옆 게단을 지나 좁을 길을 걸어올라가다보면 바위벽에 그림인지, 기호인지 모를 것이 새겨진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후기 종두법을 실시한 지석영의 형 지운영(1852 ~ 1935)이 이곳 백련암지에 은거할 당시에 쓴 글로 바위면을 다듬어 음각으로 거북귀자를 새겨 놓은 것이라도 한다. 삼귀자 좌측엔 ‘불기 2947년 경신중양 불제자 지운영 경서’란 명문이 있어, 1920년에 쓴 것을 알 수 있다. 서체는 전서로 우측에는 ‘관음몽수장수영자’라 하여 꿈에 관음보살을 본 후에 글씨를 썼음을 알 수가 있다. 보기에는 무슨 기호같기만 한데 전서체라고 하니 이해가 갈듯도 하다.
오솔길을 따라 5분여를 올라가면 자연암벽에 부조되어 있는 마애삼존불을 만날 수 있다. 산속을 올라가 만난 삼존불은 신비롭기까지 한다. 힘들게 올라온 것을 보상이라도 받듯이 인자한 모습으로 맞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삼막사 마애삼존불은 얼굴이나 상체의 표현은 조선시대 불상에서는 파격적 수법이지만 몸의 표현은 평판적이고 경직되고 상체와 하부로 내려갈수록 얕은 기법 등은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영조 39년이라는 문구가 있어 조선후기 불교조각 연구에 귀중한 자료라고. 경기도 유형문화재 94호다.
마애삼존불을 보고 내려와 출출하던 차에 삼막사에서 주는 점심공양을 먹고 내려오는 길은 과거를 지나 현실로 돌아오는 통로같았다.
만안교에서 정조대왕의 발차취를 느끼다
안양에서 가장 유명한 조선시대 유적은 ‘만안교’다. 말로는 많이 들어봤던 만안교를 보기위해 석수동으로 차를 몰았다. 가뭄 때문인지 하천에는 풀만 무성한데, 제법 넓은 돌다리가 운치가 있다. 다리 근처에는 작은 공원도 조성되어 있고, 근처의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나무그늘 아래 더위를 식히는 모습이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한다. 이 다리는 효성이 지극했던 조선 정조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러 갈 때, 참배행렬이 편히 건너도록 축조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홍예석교다. 당초의 참배행렬은 궁궐을 떠나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 노량진, 과천, 수원을 경유하였느나 과천의 노정길에 사도세자의 처벌에 참여한 김상로의 형 약로의 묘가 있어 불길하다하여 노량진에서 시흥, 안양, 수원의 새로운 행로를 만들면서 이곳 안양천을 경유하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현 위치로부터 남쪽 200m 지점에 있었으나 국도확장사업으로 1980년 8월에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만안교 다리 옆에는 만안교 축조를 칭송한 만안교비가 세워져 있다.
일번가 도심에서 일제강점기 역사의 현장을 만나다
만안교 답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안양의 구도심 일번가로 향했다. 번화한 거리에 무슨 유적이 있다는 걸까? 일번가 뒤편 골목에 주변의 건물이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한옥 건물이 눈에 띈다. 바로 구) ‘서이면사무소’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은 마당, 부엌으로 사용된 곳, 그리고 사무실로 사용된 곳에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고, 숙직실과 면장실도 보인다. 전시실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면사무소의 업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서류들과 책상등 사무기기들도 전시되어 있다. 가장 번화한 현대식 건물들 사이에 있는 구)서이면 사무소, 그 시절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시대의 생활상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구)서이면사무소는 1914년에 지금의 호계도서관 부근에 신축 후 1917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1949년까지 32년간 면사무소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1949년 개인에게 매각되어 삼성의원으로 사용되었고, 이후 한식당으로 사용되다가 2000년에 시에서 매입하여 복원하였다. 한옥건축인 이 건물은 문화재자료 100호다. 매년 만안교 다리밟기 놀이도 진행되는 등 만안교는 안양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중 하나다.
그동안 안양역사박물관에서 시작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까지 안양의 유적들을 살펴보면서 생각보다 많은 유적이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역사책에서 보거나 박물관, 궁궐 등 유명한 문화재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 또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고, 그 역사가 이어져 현재의 안양이 있다. 이 번 역사탐방의 가장 큰 소득은 내가 살고 있는 안양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한가한 주말 아이들 손 잡고 근처 유적지를 들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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