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늦되는 줄만 알았던 아들은 세 돌 무렵부터 자폐장애의 특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래 있던 상태''에 대한 집착이 강해 양말을 벗기려면 깊이 잠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겨울에도 반팔 옷을 고집하는 바람에 학대 받는 아이로 오해받기도 했다.
롯데백화점 일산점 갤러리에서 7월 5일까지 전시회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 색깔에 날개를 달다'' 전을 여는 자폐장애 최명은(15)군과 어머니 조난주(50)씨를 만났다. 자폐를 넘어 ''색채 천재 소년''으로 불리는 최군은 전시를 열게 된 그 자체로 무척 행복해했다.
자폐 소년의 못다 한 말이 그림으로
정발산동에 위치한 이루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최군은 날마다 학교가 끝나면 전시장으로 향한다. 그가 간절히 원한 전시였기 때문인지 특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조난주 씨는 "명은이의 머릿속에 전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전시회를 보면서 자기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군은 그림을 돌려주지 않는 공모전 참여를 거부하는 대신 전시회를 열고 싶어 했다.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롯데갤러리와 인연이 닿았다.
최군이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이던 2014년 3월이었다. 그때까지 최군이 집착한 것은 선풍기나 엘리베이터, 기차였다. 미술 레슨을 시작한 건 그저 ''아들이 예술을 가까이 하며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때문이었다.
전문가도 놀라는 독특한 색감
"명은이를 지도해주시던 성병희 선생님이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미술 관련해서 자폐아들이 일할 수 있는 회사들을 자꾸 알려주시는 거예요. 너무 과장하는 것 아닌가 싶고 먼 미래의 이야기라고 생각해 관심을 안 뒀죠."
정말 자질이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 때는 중학교 1학년 때였다.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들을 선택하는 건 색에 대한 선입견이 없어서라고 하지만, 그러면서도 조화롭고 어딘지 멋스러운 자기만의 느낌이 배어 나오는 게 신기했다. 전공자들은 나란히 쓰지 말라고 배운다는 색들을 배치하는 과감함. 자유로운 색깔 선택은 색다름을 넘어선 감각을 선보였다. 전시의 관람객들도 "색감이 독특하고 새롭다"는 반응이다. 롯데갤러리 큐레이터는 최군을 ''색채 천재''라 불렀다. 성병희 화가는 "같은 대상을 그려도 명은이의 터치는 특유의 맛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을 조각가라고 밝힌 한 관람객도 "그림에 자신만의 느낌이 있다. 색 감각이 놀랍다"고 호평했다.
장애 있어도 어울려 살아갈 세상 되기를
조난주 씨는 사람들의 칭찬을 덤덤히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들이 ''나도 잘하는 것이 있다''고 느낀다면 만족한다고. 세간의 평가보다 더 마음 쓰는 것은 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해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사람들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을 쌓아 온 최군. 거기 그치지 않고 아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조난주 씨 부부의 바람이다.
"명은이가 혼자 돌아다녀도 누구 집 아들 어떤 아이라는 걸 알고 도와줄 수 있는 관계를 남겨주고 싶어요. 지역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만들어 가려고 해요."
그림이 있어 행복한 15살의 색채 천재 소년 최명은 군. 편견 없이 색을 쓰는 최군처럼, 세상 역시 장애를 이유로 소년에게 어떤 색도 함부로 덧칠하지 않기를 바라본다.
전시 롯데백화점 일산점 별관 지하1층 롯데갤러리/ 7월 5일까지 전시. 관람시간 오후 8시까지.
문의 031-909-2688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색채 천재 최명은 군이 소개하는 ''나의 그림''
#<일본 할머니와 하얀 고양이>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그림이에요" (TV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할머니와 고양이의 사연을 보고 그렸다. 잎맥과 옷 패턴에서 자폐 장애 특유의 표현이 보인다.)
#<메추라기 가족> "메추라기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이번 전시에 초창기 그림부터 동물 드로잉까지 선보이고 있다.)
#<파프리카 강아지> "친구 유준이는 키가 많이 컸어요" (사춘기가 되면서 현실 속 욕구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최명은 군. 친구와 함께 하는 일탈을 꿈꾼다.)
#<숲에서> "친구들이 많이 와서 그림을 보면 좋겠어요" (전시 준비가 어려웠지만 친구들이 보러와 줄 것을 기대하며 극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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