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은 여름에 걸맞게 블록버스터급 액션 영화지만 스토리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생각 이상으로 묵직하다. 첨단과학의 발달 덕분에 죽은 CIA 요원 ‘빌’의 기억을 이식받게 된 ‘제리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강력범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던 제리코는 놀랍게도 빌의 기억과 함께 다양한 능력, 감정까지 전달받는다.
어느 순간은 제리코였다가 어느 순간은 빌이 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된 제리코. 타인을 배려하고, 아내와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하는 빌의 감정이 거추장스럽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빌의 감정을 받아들인다. ‘빌’의 기억과 감정이 전달되자 아내마저 그를 가깝게 대한다. 기억을 이식받은 그는 이제 ‘제리코’일까, 아니면 ‘빌’일까?
영화 <크리미널>을 한여름 킬링타임용 오락영화로 치부할 수 없는 건 이런 철학적 질문이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기 때문이다. 게리 올드만, 케빈 코스너, 라이언 레이놀즈, 토미 리 존스의 깊이 있고 현실적인 연기들이 스토리에 힘을 실어 준다. 꿈속으로 들어가 그 사람에게 기억을 주입시키거나 빼내는 일을 이야기 했던 <인셉션>, 완벽한 기억을 심어서 고객이 원하는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회사가 등장했던 <토탈 리콜>, 천재 과학자의 두뇌가 슈퍼컴퓨터에 이식됐던 <트랜센던스> 등은 기억 이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지만 어쩐지 SF적인 분위기가 강했던 영화들이다.
이들에 비해 <크리미널>은 현대 뇌 과학의 발달로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실제 미래학자 레이 커츠웨일은 ‘뇌신경의 연결경로를 발견해 낸다면 다른 사람에게 기억을 이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학의 발전은 박수를 치며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와 더불어 우리는 보다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허용 범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빌의 아내는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쁘겠지만 제리코의 가족 입장은 어떨까? 기억 이식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영화는 그런 고민을 배제하기 위해 일부러 제리코를 수감자로 설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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