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어디까지 가봤니-화창마을에서 석수시장까지

도시에서 마을을 찾다! 꽃과 창고가 있는 마을, 꽃챙이

지역내일 2016-05-13

지난해, 큐슈에서 작고 아기자기한 온천마을 유휴인을 거닐었던 기억이 난다. 유후인 기차역에서부터 긴린코 호수까지 이어진 골목 유노쓰보 거리는 고풍스런 가옥과 현대적인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1km 가량 이어진 거리에는 기념품 가게와 공방 그리고 먹거리 카페만 즐비했다. 먹고 보고 즐길 거리는 많은데 오래도록 가슴에 아로새길 추억거리는 부족했던 유후인은 그렇게 아쉬움으로 남았다. 

화창


어슬렁거리다 발견한 보석같은 골목길
박석교 사거리에서 화창초등학교로 가는 길. 석수럭키아파트를 지나 건널목을 건너면 석수시립도서관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차와 사람으로 넘쳐나는 번화가를 지척에 두고 조금만 변두리로 들어서면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고즈넉한 곳. 바로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화창마을 입구다.
야트막한 언덕을 조금 오르자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교문을 나선다. 화창초등학교 정문 주위에 만개한 철쪽, 석수시립도서관으로 오르는 길에도 온통 꽃 천지이다.
"석수2동 지역에는 과거에 꽃챙이, 연현, 신촌, 벌터라는 자연마을이 있었어. 신촌과 벌터는 잘 쓰이지 않아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화창, 연현마을이라는 명칭은 지금도 쓰이고 있지. 화창초등학교, 연현중학교 이렇게 학교 이름에도 마을 이름이 들어가고 말이야. 원래 화창은 꽃챙이라는 지명을 부르는 말이야."
석천약수터 앞에서 만난 어르신이 들려준 말이었다. 고향인 정읍에서 20대에 안양으로 올라와 석수동에서 터를 잡고 50년을 넘게 사셨다는 어르신.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화창마을의 유래를 차분한 어조로 들려주었다.
꽃챙이(꼬챙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예전에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불리어졌다고 한다. 이곳에는 조선 말기까지 쌀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봄이 오면 철쭉이 많이 피었다는 것.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벚나무를 비롯해 각종 꽃을 재배하기 시작하여 꽃챙이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지지자료 경기도 시흥군 편에 곶창이라고 기재된 것으로 보아 예전엔 이곳 일대가 안양천변에 위치한 곶(바다에 뾰족하게 내민 땅)이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한다. 마을 내에는 효종 때 예조 및 병조 판서를 역임한 박서와 일제강점기 만석꾼의 묘가 있다.
화창마을이 위치한 석수2동은 지금의 안양육교 일대가 예전에는 산새가 높고 후미진 곳이어서 서울로 가는 행인, 과객이나 보부상이 이곳을 지나치면서 산적이나 강도들에게 수난을 겪을 만큼 험준한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서리재 고개는 마을이 형성되기 이전 농경지여서 참외, 수박 등의 청과물을 이들 산적과 강도가 떼를 지어 서리를 해가는 바람에 농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는 것. 그 후부터 산적과 강도가 참외, 수박 등을 서리해가는 곳이라고 하여 서리재 고개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안양육교는 1905년 을사조약이 조인된 지 5일 후인 11월22일 이등박문이 수원지방에 유람갔다가 돌아가는 길에 안양 출신 원태우 지사에게 돌멩이 세례를 받아 치욕을 당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80년의 세월이 비켜간 한옥을 발견하다
화창초등학교를 옆에 끼고 일방통행으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주택은 아니지만 아주 오래전에 지었을법한 빌라 한 채가 눈에 띈다. 붉은 벽돌 사이로 담쟁이 덩쿨이 소설 속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할 만큼 멋들어지게 벽면 한 쪽을 장식해 자꾸만 눈길이 갔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아치형 대문을 마주한 주택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처럼 금방이라도 덕선이와 선우, 정환이와 택이 그리고 동룡이가 문을 박차고 뛰어 나올 것만 같은 눈에 익숙한 80년대 골목길이 손짓을 한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며 주위를 둘러보던 중 한옥 한 채를 발견했다. 금방이라도 하늘에선 비가 내릴 것처럼 잔뜩 찌푸렸는데 담도 없는 그 집 마당에선 할머니 한 분이 화단을 가꾸고 있었다. 온통 꽃나무와 잔디로 화단을 예쁘고 가꾸어 놓아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마디씩 건네고 발길을 붙잡는 그곳의 주인인 할머니는 80년 된 한옥의 안주인이었다.
회색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아파트에만 살아온 사람들에게 담이 없는 집에서의 삶이 이해가 될까?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집은 내가 시집오긴 전에 지어졌는데 80년 된 곳으로 여기서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랐어. 예전에는 야트막한 담이 있었는데 도로에 편입되면서 아예 담을 없애버렸지. 꽃나무를 가꾸고 잔디를 심었더니 사람들이 지나다니면서 다들 한마디씩 해. 도시에서도 이런 곳이 있느냐고. 어떤 사람은 명소라고 하면서 사진도 찍고 좋아하는데 또 어떤 사람은 꽃을 꺾어가거나 화단을 망쳐놓기도 하지."
북촌이나 전주한옥마을에서나 볼 수 있었던 예쁜 한옥이 안양시 한복판에서도 사람들을 반가이 맞아주고 있었다.


석수시장, 불나방을 아시나요?
화창마을을 나와 길 하나만 건너면 석수시장이 코앞이다. 한 때 3000여 평 규모의 야채도매시장이었던 석수시장은 점포수가 130여개에 이를 정도로 큰 시장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30여개에 불과하고 쇠퇴기를 걷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예술가들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꽃가게를 지나 어물전을 뒤로하고 좁은 길로 들어서면 지물포 옆에 불나방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끈다. ??여기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피식 웃음이 난다. 누구라도 이런 글귀를 보면 궁금증을 참지 못해 가게 문을 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대표 윤휘섭 씨에게 물었다. 뭘 하는 곳인지 알려달라고.
스톤앤워터 소속 작가들의 예술가 자급자족 프로젝트 계획안을 석수시장 관리주체인 (주)석수유통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비영리예술단체라는 설명이다. 지난해 7월에 오픈해 석수시장 내에서는 소문난 복합문화공간으로 작가들의 전시와 음악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볼 수 있고 또 작가들의 전시도 함께 이루어지는 곳. 불나방을 찾는 고객들에게 윤 대표가 들려준 말이다.
"앞으로 이곳에서는 인문학 강좌나 예술 교육 등이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예술가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되는 이곳은 석수시장 인근 주민들과 문화, 예술을 함께 이야기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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