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들 - 중고 엘피(LP) 음반 온오프라인 쇼핑몰 운영하는 김차호 씨

엘피 판 10만 장이 나의 연인이죠

지역내일 2016-03-23
새로운 능력자들의 시대입니다. 매니아 콜렉터 또는 덕후.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 취향을 넘어 학위 없는 전문가의 지경에 오른 이들입니다. 그들의 진정한 능력은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아닐까요? 자살율은 높고 행복지수는 낮은 대한민국, 해야 할 일 갖춰야 할 능력도 많은 나라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무언가와 사랑에 빠졌다고 말할 수 있는 그들은 진정한 능력자입니다.


대화도서관 옆 골목을 걷다 보면 중고 수입 레코드가게가 보인다



온라인 쇼핑몰 엘피이숍’(www.lpshop.co.kr)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주인장 김차호(44)씨는 1988년부터 지금까지 십여만 장의 엘피 판을 수집했다. 2003년부터는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고 2015년에는 온라인 매장을 열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보다는 집 안에 엘피판을 다 수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형이 일깨워 준 엘피 음반의 멋


김차호 씨는 어떻게 엘피판 수집의 길로 들어서게 됐을까. 그가 중고등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 중반 무렵 고향인 충주에도 팝 음악 열풍이 불었다. 차호 씨는 국내 가요들은 당시에 그렇게 들을만한 게 없어서 팝음악으로 정서를 채웠다. 하드 록이나 헤비메탈 같은 음악을 듣는 애호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던 오디오로 대학생이던 큰 형은 클래시컬한 음악을, 작은 형은 팝음악을 들었다. 두 형의 영향을 받아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스스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두시의 데이트, 김광한, 황인영과 김기덕. 라디오 디제이들이 들려주는 음악은 사춘기 소년의 정서를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기나 긴 엘피 음반 애호가 생활의 첫 발은 영국의 하드 록 그룹 딥퍼플(Deep Purple)의 머신헤드(Machine Head) 음반과 함께 시작했다. 1988년이었으니 짜장면이 700원 가량 하던 시절, 3천 원은 고1 학생에게 작은 금액은 아니었다.










음악에 가격이 매겨지는 것의 무서움


대학에서는 부동산학과를 전공하면서 음악 감상부와 메탈 밴드에 가입했다. 축제 때가 되면 대강당에 엘피 음반 재킷을 전시하고 신청곡을 틀어주던 기억은 지금도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대학원에서 영화 관련 공부를 하고 무대 조명 관련 잡지사에서 기자로, 서울 정동극장 예술단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수집벽이 있다고 할 만큼 엘피 음반을 모으던 시절이었다. 음질이 깨끗한 씨디(CD)가 보급되던 시절에도 그는 엘피 음반만을 고집했다. 씨디도 천 여 장 모았지만 완벽한 음질에 오히려 귀가 아팠다. 엘피 음반은 직접 턴테이블을 작동시키고 판을 뒤집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음악 감상의 맛을 더해준다고. 쟈켓을 보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단다.


엘피가 점점 사라져가는 시절, 레코드 가게들도 문을 닫고 음반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 더 어려운 건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예술단에서 받은 월급만으로는 갖고 싶은 음반을 다 살 수 없었다. 고민 끝에 2003, 온라인 쇼핑몰 엘피이숍을 열었다. 더 이상 듣지 않는 음반을 판매해서라도 모으고 싶은 음반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비싸게 매기지는 못했다.


온라인으로만 확인을 하고 구입한다는 건 소비자들이 전적으로 저한테 다 의지하는 건데 뒤탈이 날까 무섭기도 했어요. 음악을 돈으로 보게 되면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음반이나 음악에 대해 평을 하게 되는데 스스로 용납이 안 됐던 거죠. 음악애호가라는 순수한 마음에는 해를 끼칠까 봐.”


소소한 즐거움 잊지 않고 살았으면


그는 스스로를 응팔세대라 불렀다. 삐삐부터 아이티 문화까지 처음 접하며 대중 문화의 혜택도 받았지만 테스트 대상처럼 성장했던 세대. 지금은 한창 사회에서 일하는 동시에 은퇴 걱정을 해야 하는 세대다. 차호 씨 역시 열심히 일하다 2011년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이는 경제 활동을 접고 좋아하는 엘피 음반 일에 매진하게 된 계기가 됐다.


엘피 음반을 사는 분들은 대개 40대 이상 세대죠. 다 가장이라 돈 쓰기가 무서운 그 분들이 3천원부터 3만원짜리 음반 하나 사가면서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아요. 음반을 듣는 사람들의 기쁨, 음악을 듣는 즐거움, 이게 돈이 돼 버리면 무서워요. 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김차호 씨는 엘피 음반을 비싸게 팔지 못한다. 3천 원짜리 음반 판매 페이지에 설명 글을 성심껏 적는 것, 생활과 취미의 경계선에서 초심을 잃지 않는 그 마음이 진정한 그의 능력인지 모른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무료로 음악을 감상하는 공간을 열어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다.


경제적인 활동 때문에 모든 것을 희생하고 사는 것은 불쌍해요. 느리게 살더라도 소소한 즐거움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위치 일산 서구 대화동 2132-11번지


문의 엘피이숍 http://www.lpeshop.co.kr


     


김차호 씨의 엘피 음반 추천


고양이처럼 보드랍고 따스한 봄에 이런 엘피 음반 어때요?”


봄날 오후 세시부터 네 시 사이의 햇볕을 좋아해서 산책을 하거나 창가에 앉아 있어요. 그때는 교향악보다는 여성 소프라노나 알토들이 피아노에 맞춰 부르는 가곡이 마음에 와 닿아요. 털 보송보송한 고양이가 햇볕을 쬐는 것 같은, 3월의 찬바람에 따뜻한 봄바람이 섞여 들어오는 느낌의 음악이에요.


독일 성아가 에디뜨 마티스의 모차르트 가곡집, 보자르 트리오가 연주한 클라라 슈만 피아노 3중주곡, 제랄드 무어 고별연주회 음반이 봄날에 자주 듣는 음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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