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강사들의 인생 2막 이야기
“가르치는 보람으로 살지요”
바야흐로 백세시대, 요즘 어르신들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건강과 경제력을 갖추고 부지런히 자기계발에 힘쓰는가 하면, 다른 이들을 돕거나 가르치는 등의 활발한 사회참여 활동으로 현역 못지않은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길어진 은퇴 이후의 삶을 즐겁고 보람되게 사용하고 있는 어르신들. 전문적인 실력을 갖추고 ‘강사’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인생 제 2막을 올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정선숙 리포터 choung2000@hanmail.net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 권명옥, 한남순 부부
“이 일이 천직인가 봅니다”
방화근린공원 민속놀이마당의 초가집에서 만난 권명옥, 한남순 부부. 넓은 공원을 마당삼아 옆으로 길게 지은 초가집의 작은 방에 전통공예품들이 가득하다. 모두 짚으로 만든 것으로 짚신, 방석, 가방, 모자, 소쿠리 등의 옛 생활용품과 지게, 복조리, 여치 집, 잠자리 등 집에 걸어두거나 가방에 예쁘게 달고 다닐 수 있도록 만든 장식품들이다.
권명옥, 한남순 부부는 매일 아침 7시가 되면 어김없이 이곳에 와서 짚과 풀로 공예품을 만든다. 오늘은 삶은 달걀 여섯 판을 한쪽에 쌓아놓고 짚으로 달걀꾸러미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근처 유치원에서 체험학습으로 초가집 교실을 방문하는 날이란다.
부부는 ‘길꽃 어린이 도서관’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다. 이들 부부를 비롯한 전통놀이 짚공예 강사들은 매주 토요일 방화근린공원에서 전통놀이와 짚공예를 통해 노인·부모·자녀 3대가 어울릴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고 학교와 유치원의 방과 후 활동이나 체육시간, 운동회 등에 강사로 파견되어 즐겁고 유익한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봄, 가을철 행사가 많은 날은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을 정도로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 강사들이다.
점점 잊혀 가는 전통놀이를 되살리고 짚공예를 알리자는 취지로 활동하면서 강사들이 얻는 자부심은 크다. 아이들은 딱지치기, 굴렁쇠 굴리기, 사방치기, 새총놀이, 활쏘기, 윷놀이 등 15가지 정도의 전통놀이를 하면서 같이 노는 법을 배운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학생이 하나가 돼 즐거워하는 모습은 강사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한다.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는 권명옥씨는 8년 전 취미삼아 시작한 이 일이 천직이 될 줄 몰랐다고 전한다.
“길꽃 어린이도서관의 김동운 관장님의 권유로 함께 초가집 교실을 짓고 전통놀이와 짚공예를 주위에 알려왔습니다. 지금은 새로 들어오는 강사들에게도 짚공예를 가르치고 있답니다. 얼마 전에는 강화도에 견학을 가서 왕골공예품을 보고 왔는데 또 다른 부분을 경험하는 좋은 시간이었지요. 모쪼록 많은 사람들이 전통놀이와 짚공예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야기할머니 박문숙씨
“옛 이야기로 바른 인성 키워주고 있어요”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전래동화 수업을 하고 있는 박문숙씨의 직업은 ‘이야기 할머니’다. 젊은 시절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은퇴 후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제 2의 인생을 위해 동화구연을 배웠다고 한다. 그때 동화구연강사로부터 이야기할머니를 뽑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바로 모집에 응시, 1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6기 이야기할머니가 되었다.
당시 이미 동화구연자격증을 따고 대회에 나가 금상까지 수상한 실력파였지만 이야기할머니로 아이들 앞에 서기 위한 길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면접에 합격한 후 안동에 있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박 3일 동안 교육을 받고 다시 서울여대 혜화동 캠퍼스에서 1년 동안 월례교육 및 심화교육 과정을 거쳐서야 현장에 나설 수 있었다.
매일 한복을 차려입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즐겁고 설렌다는 박문숙씨. 현재 목동에 있는 일루 어린이집과 꽃사슴 어린이집, 양평동의 영은 유치원에서 약 130명의 아이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고운 개량한복을 여러 벌 구입해 바꿔가면서 입는데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때마다 이목이 집중된단다. 유치원에서는 특히 여자아이들이 좋아한다고. 그는 “이야기 할머니다”라며 달려와 반기는 아이들을 보며 만족과 더불어 수업에 대한 책임감도 느낀다.
“일주일에 하나씩 이야기를 통째로 외워야 해요. 말소리도 중요하지만 내용을 성실하게 소화하는 것이 우선이지요. 녹음기를 틀어놓고 오고가며 완벽하게 암기해서 아이들 앞에 서야합니다.”
박문숙씨는 이야기를 전할 때 아이들의 상상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도구사용을 자제하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졌을 때를 대비해 내용에 맞는 소품을 미리 준비한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고르고 직접 바느질을 하거나 사진집을 찾아 오리기도 하는데 고민하고 준비한 만큼 아이들의 반응이 다르단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깜짝 놀란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내용에 대한 질문을 하면 정확하게 대답해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지혜로운 선현들의 삶을 전하며 바른 인성을 길러주니 기쁘고 보람됩니다.”
숲 해설가 이성철씨
“자연과 인간의 통역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등포구 안양천생태공원에 신나는 하모니카 연주가 들린다. 체험학습을 나온 유치원생들이 하모니카를 든 이성철씨를 따라다니며 풀과 꽃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강아지풀 두 줄기기가 그의 손에서 우산이 되었다가 토끼모양도 되었다가 금세 왕관과 팔찌로 바뀐다.
아이들은 자신의 팔뚝위에서 폴짝거리며 움직이는 강아지풀이 마냥 신기하다. 무심결에 지나친 풀들마다 고운 이름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안양천 탐방이 끝나면 생태운영센터에서 방금 따온 풀로 하얀 손수건에 물을 들이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체험을 즐긴다.
이성철씨는 이 모든 활동을 지도하는 숲 해설가로 사람들에게 숲과 자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나눠주며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은퇴 전부터 숲 해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꾸준히 해왔다는 그는 숲에 대한 열정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서 활동하며 유치원을 비롯해 초·중·고등학교와 기업 강의도 나간다.
“원래 과묵한 성격인데 이 일을 하면서 말이 많아졌어요. 그러다보니 늘 목소리도 쉬어있죠.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을 대하는 일로, 수준에 맞춰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무, 풀, 꽃, 새, 물고기, 곤충 등 관련 분야에 대해 공부해야 할 내용도 방대하구요. 플루트와 오카리나,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배운 것도 숲 해설가로서의 역할에 더 충실하기 위해서랍니다.”
이성철씨는 숲에서 배우는 것을 통해 사회성과 인성을 기를 수 있다고 전한다. 공동체 의식과 남에 대한 배려가 무너져 가고 있는 요즈음, 숲에서 얻어지는 긍정의 에너지가 사람을 바꾼다고 확신한다.
숲 해설가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 온 그는 앞으로 살림치유지도사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자연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숲은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능력이 있어요. 아이들은 숲 체험을 통해 자연에 흥미를 느끼고 사랑하며 작은 생명까지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지요. 사명감을 갖고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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