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고 입시에 대한 조언, 신일중 박진호 교사

독서와 자기주도학습으로 관심분야의 호기심과 탐구력 유지해야

지역내일 2015-07-23



과학고는 수학 과학에 재능 있는 최상위권 학생들에게 열려있는 곳이다. 좁은 문이지만 ‘과고 입학은 곧 명문대 입학’이라는 보증수표로 통해 많은 학생들이 과고 입시 준비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하지만 수학 과학을 좋아했던 아이들도 지나친 선행학습과 사교육이 관행이 된 입시를 준비하면서 지쳐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과학고 설립의 본래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에 과고 입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신일중 박진호 교사로부터 최근 과고 입시 경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경기북과학고 설립 때부터 10년간 근무
경기북과학고(이하 북과학고)는 2005년 설립됐다. 박진호 교사는 그때부터 북과학고에서 10년을 근무하다 올해 초 신일중으로 발령을 받았다. 북과학고에서 근무하는 기간 중 8년 정도는 과고 입시를 위한 문제를 출제하거나 선발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과고에서는 10년 이상 근무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어 학교를 옮겨야 할 때 많은 고민을 했다.
국제고나 일반고에서 오라는 요청도 많았지만 과학고에서 근무한 경력이 오히려 중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신일중으로 전근을 신청해 오게 됐다. 신일중은 2015학년 입시에서 과학고와 영재학교에 7명의 학생을 진학시켰다. 이는 고양시에서 가장 많은 숫자로 신일중은 수년 전부터 과고와 영재고 입시에서 두각을 보이는 학교였다. 그는 중학교에 오자마자 과고 입시에 관심이 많은 학생과 학부모를 위해 진학과 관련된 상담과 설명회를 하며, 그가 10년간 경험한 과학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과고 입시에 훈련된 학생들이 많은 현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과고 입학을 위한 1단계 전형은 서류평가와 개별 면담이다. 서류평가는 생기부와 자소서, 교사 추천서로 과고에서는 이를 기초로 지원자에게 맞는 발문을 개별로 뽑아 면담을 준비한다. 이때 교과 관련 질문은 전혀 하지 못한다.
과고 입시 역사가 길어지면서 중학교 선생님들은 과고에 어떤 학생들이 진학하면 좋은지 전형적인 케이스를 파악하고 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심화된 내용의 이해가 빠르고, 자신만의 문제 해법을 제시하거나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고 푸는 학생들이 그런 경우다.
선행학습에 길들여진 학생인지, 아니면 본인이 관련 분야의 다양한 책을 읽고 호기심을 갖고 있는 경우인지도 구분할 수 있다. 학업성취도도 좋고 독서량도 많고, 관련 분야의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학생이라면 생기부에 그 내용을 그대로 기록해 준다. 하지만 과고에 지원하는 학생들 중에 이런 생기부 내용을 가진 학생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개별 면담은 이를 확인하는 과정으로 학생을 직접 만나보면 과고에 들어오기 위해 만들어진 학생인지, 아니면 정말 수학 과학에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진학을 희망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요즘은 학교나 학원에서 실험 위주의 과학 수업을 많이 한다. 실험 설계나 세팅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더라도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며 참고로 더 궁금한 부분을 책이나 인터넷을 찾아보고 자기 나름대로 정리한 학생들은 면담 시 남 다른 특징을 보인다. 관련 분야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신나서 대답을 한다. 본인이 책을 뒤지며 살펴보니 어떤 내용이 호기심을 자극했고 또 의문이 생겼다며 이런 부분을 과학고에 와서 공부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낸다. 과학고에서는 이런 내용을 쏟아내는 학생들을 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하는 학생들 또한 의외로 적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질문을 던질수록 비슷한 수준의 대답을 하며 과고 진학을 위해 만들어진 학생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간혹 사교육을 받기 힘든 시골 지역 출신 중에 그런 학생들이 발굴되기도 한다. 도시에서 온 학생들은 학습량이 깊긴 하지만 대부분 현실적인 목적으로 과학고 진학을 위해 훈련된 경우다. 개별 면담에서는 적극추천, 추천, 보통, 판단유보 등 이렇게 네 부류로 학생을 구분해 선발 기준으로 삼는데 사교육과 선행학습 등으로 준비된 학생들은 대부분 추천으로 분류되며 그런 학생들이 주로 합격하는 것이 과학고의 현실이다.




호기심과 탐구력 유지가 관건
서류와 개별 면담은 소집면접 대상자를 선발하기 위한 과정으로 이렇게 해서 2배수 정도의 학생들을 추려내 소집면접을 치른다. 소집면접은 지필고사는 아니고 면접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방식이다. 수학, 과학과 관련된 문제지만 교과지식을 묻는 것이 아닌, 학생들의 잠재력과 역량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들이 주어진다. 이후 서류 평가와 면접 결과를 종합해 학교 입학전형위원회의 심의·의결을 통해 최종 합격자를 선발한다.
2010년까지는 과고 전형에서 경시대회나 올림피아드 등의 심화 문제가 출제됐다. 그러나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입시가 바뀌면서 교과와 관련된 문제를 출제할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즉각적인 사고를 유발하는 문제들이 등장했다. 이런 종류의 문제들은 선행학습이나 정형화된 문제풀이에 익숙해져 있는 학생들에겐 아주 어려운 것이었다.
문제 출제자들은 현재 입시에서 놓치고 있는 것을 채우고 학문 자체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고심하며 문제를 뽑아냈다. 학생들의 사고력을 어떻게 자극할 것인가, 학생들이 과고에 와서 어떻게 즐기면서 학업의 호기심을 유지해 갈 수 있을 것인가에 고민의 포인트를 맞췄다. 이런 노력들을 학원에서 배운 선행이나 심화학습들로 커버하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부모는 자녀의 재능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때론 재능을 잃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무엇인가 탐구하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재능을 표출한다. 그런데 재능을 표출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에게는 과도한 학습이 강요된다. 학습에 끌려가는 시간들이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본인이 갖고 있던 재능과 흥미를 잃어버리고,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어긋나는 경우도 있다. 어려운 입시 관문을 뚫고 들어왔지만 컴퓨터 게임에 빠지거나 학업에 손을 놓은 학생들을 과고에서도 종종 볼 수 있다.
과고 입시가 달라지고, 과고 학생들의 조기졸업 비율을 축소하는 정책이 실현되면서 과학고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 변화를 면밀히 살피다보면 과고 입시 준비의 방향이 보인다. 독서와 자기주도학습으로 관심 분야의 호기심과 탐구력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 점점 더 유리한 방향으로 과고 입시는 변하고 있다.
(본문에 나와 있는 과고 전형 안내는 2016학년도 과고 전형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학교별로도 전형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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