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어미가 혼자 자식을 키우고 앵무새는 부부끼리, 코끼리는 대가족이 무리지어 산다. 동물들도 필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가족을 이루고 사는데 왜 사람만은 유독 나와 다른 형태의 가정을 곱지 않은 눈으로 볼까. (사)한부모가정사랑회는 한부모 가정을 향한 세상의 편견에 맞서 든든한 벽이 되어주는 곳이다. 이혼 위기 가정 상담부터 자녀교육 문제까지 한부모 가정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한다.
한 아이가 이끈 봉사의 길
한부모가정사랑회 고양시 지부는 지난해 11월에야 공식 명칭을 달았다. 전미현 씨와 남편 임병희 씨는 한부모 가정을 돕는 활동을 십여 년 전부터 조용히 하고 있었다. 교육전문회사에서 만난 두 사람은 결혼 후 학원을 운영하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들을 봉사의 길로 이끈 건 지난 2006년에 만난 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 아이는 구구단도 못 외우고 숙제도 빼먹기 일쑤였다. 마트에서 친구들 돈을 뺏고 나쁜 행동도 한다며 다들 피하는 아이였다. 어느 날 전미현 씨는 몰래 아이를 따라갔다. 아이는 공장에 간 엄마를 밤 열한 시까지 혼자 기다리며 지내고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에 전 씨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이의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해 학원에서 저녁밥도 먹이고 학교 숙제도 챙겼다. 평일에는 4시간씩 아이를 돌보고 주말에도 함께 지냈다.
안정적인 돌봄이 아이를 변화시켜
그렇게 여덟 달 이상을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다보니 서서히 변화가 찾아왔다. 구구단 2단도 못 외워 왕따를 당하던 아이의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학교 담임선생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옆에서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만날 커닝하고 돈 뺏는 아이인데 이번 시험에서 95점을 맞았다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 아이를 때렸다는 거예요. 아이가 저한테 전화하면 말해줄 거라고 하는데 진짜냐고 물어보는 거죠. 전화기를 들고 있는 제 손이 떨렸어요.”
전 씨의 항의로 아이는 다시 시험을 봤고, 역시 90점 넘는 점수를 받았다. 그제야 담임교사의 사과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수없이 학원 물건을 훔쳐갔던 아이, 공부에는 관심 없던 아이가 안정적인 돌봄 속에 사랑을 받으니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금만 도와주면 비뚤어지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아이를 너무 무관심한 채로 방치한 거죠. 그 아이를 보면서 생각했어요. 내가 지금 여기서 정말 해야 할 일이 뭔가 하고 말이죠.”
상처 입으며 가시를 뽑다
하나둘 상처를 안은 아이들이 학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상처 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들의 상처에 전 씨 부부도 수없이 찔렸다. 문제집을 가지고 도망치는 사람도 많고 빌려주고 채 못 받은 돈도 아직 많다.
더 큰 문제는 도움을 받는 가정의 아이들이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좋은 일로 시작했지만 단 돈 천 원이라도 내고 도움을 받는 것과 공짜로 받는 것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저소득층을 입증하는 자료를 가져오는 가정에 한해서만 전액 무료로 하고 있다. 나머지 가정에서는 형편껏 돈을 내도록 한다. 또 하나 조건이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학원비를 도움 받는다는 사실은 일급비밀이다.
“아이가 도움 받는 걸 알게 된 순간 학원에 안 나와요. 아이들이 수치심을 가져서 물어볼 거 있어도 눈치를 보거든요. 이 비밀을 깨면 절대 돕지 않아요.”
상처 입은 치유자의 이름으로
어린 시절 전미현 씨의 부모님은 불화가 심해 이혼을 했다. 아픔 속에 성장한 전 씨는 이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아이들 곁에 돌아와 남편과 함께 돕고 있다. 학원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후원받기도 쉽지 않았고, 한부모 가정들이 싫어해 후원모집 간판을 달기도 힘들었다. 십여 년 그렇게 돕다보니 전 씨 부부의 가정에도 한계가 왔다. 결국 지난해 11월 한부모가정사랑회 고양시 지부 간판을 달았고 월 1만 원 후원인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힘든 고비도 많았지만 가족들의 도움이 있어 지금껏 걸어올 수 있었다. 친정 부모님은 다시 가정을 합쳐 둘도 없는 후원자가 되었고, 남편은 그야말로 삼시세끼를 다 책임지고 있다. 큰아이는 학원에 처음 오는 한부모가정 자녀들과 허물없이 소통하는 역할을 기꺼이 맡아 주었다.
한부모가정사랑회 고양시 지부는 한부모 가정 아동교육 프로그램, 한부모 가정 자조모임, 청소년 현실적응 교육, 이혼가정 부모교육, 재혼 준비 교실 등 다양한 한부모 가정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혼가정 뿐 아니라 이혼 위기의 가정, 사별 가정, 별거 가정도 모두 한부모 가정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전미현 씨는 “상처가 더 깊어지기 전에 찾아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비쳤다.
한부모가정사랑회 고양시 지부는 한부모가정이 닫힌 문을 열고 상처를 날려 보낼 수 있도록 함께 도울 후원인과 아이들 교육을 도울 영어강사를 모집한다. 찾아가는 반편견교육 단체 신청도 받고 있다.
문의 031-918-0121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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