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수지구 동천동에 거주하는 이창식(66세)씨는 일명 ‘하찌’로 불린다.
5살 난 손자가 말을 배우면서부터 붙여준 별칭이다. 할아버지를 유달리 따르고 좋아하는 손자와 알콩달콩 만든 추억과 시간들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쉬웠던 이창식씨는 손자를 돌보며 틈틈이 써온 일기를 책으로 펴낸 ‘하찌의 육아일기’ 저자이기도 하다.
직장 생활과 육아의 병행을 힘겨워하는 딸을 위해 봐주기 시작한 손자는 어느덧 5살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함께 한 오롯한 시간만큼이나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비슷한 이유로 손자육아가 많아지고 있는 이즈음, 이창식씨를 통해 손자 육아의 노하우를 들어보았다.
권미영 리포터 myk31@paran.com
“아이가 하는 짓은 예쁜 짓이나 미운 짓이나 다 예쁘다. 웃어도 귀엽고 울어도 귀엽다. 용한 짓을 해도 신통해 보이고 어리석은 짓을 해도 신통해 보인다. 사랑의 본질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외손자한테 푹 빠져서 이따금 남편 조석도 뒷전이 돼버린 아내를 보면서 나는 그녀가 아주 예쁘게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월 27일 금요일)
손자 재영이가 아기일 때 적어두었던 육아일기의 한부분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우주도 못 말리는 법.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은 외손자를 돌보며 이창식 씨는 그 날 그날의 감동을 글로 적어놓았더랬다. 그렇게 모아둔 일기가 한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다. 사실 이 씨의 이력만 놓고 보자면 25년 가까이 100여권의 책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겸해온 교수의 직함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하찌의 육아일기’는 소소한 일상에서 겪는 에피소드들이 간결하면서도 진솔하게 독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 뿐 아니라 손자를 키우는 누구라도 공감이 될 만큼 그의 글 솜씨가 매끄럽고 재미난 것은 물론이다.
전문번역가에서 육아 경험 엮어낸 수필가로 변신
이런 호응에 탄력을 받아 이 씨는 최근 두 번째 책을 출간했다. 이번엔 형식을 조금 달리 해 동화형식으로 엮은 ‘배꼽마당 아이들’이라는 옛 이야기책이다. 이 씨가 어려서 들었던 이야기, 경험했던 내용을 동화형태로 묶어 펴냈다. 역시 손자가 조금 크면 읽어줄 요량으로 틈틈이 써놨던 것.
“손자를 얻기 전까지는 번역만 했는데 외손자가 나를 수필가이자 동화작가로 만들어 준 셈이죠. 아이를 키우고 돌보는 일이 쉽지 많은 않지만 손자가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의 육아일기와 동화책을 읽게 되면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을 거라 생각하니 보람도 크죠.”
사실 처음부터 손자를 맡아 돌볼 생각은 못했다는 이씨. 그런데 결혼한 딸이 직장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이 버거워 도움을 요청하자 먼저 아내가 손을 덥석 잡았더랬다.
“손자도 돌보고 분당에 있는 딸네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집안일도 거들어 줘야하니 마누라가 힘이 많이 들더라고요. 마누라가 빨리 닳으면 결국 나만 손해니 도와주는 것이 결국 내 이익이다 싶었죠.” (웃음)
그렇게 옆에서 거들면서 시작된 육아를 통해 어느 순간 세상에 둘도 없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는 이 씨.
손자 통해 에너지와 웃음 얻는 노년의 즐거움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재능이 있는 걸 손자 키우며 알게 됐어요. 상냥하게 웃고, 천사 같은 미소와 재롱을 보여줌으로써 양육자가 사랑을 줄 수밖에 없도록 만들지요.”
딸을 키울 때는 몰랐던 새로운 사랑을 손자육아를 통해 다시금 깨닫게 됐다는 이 씨는 육아가 비록 힘은 들지만 축복과도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무척 따르고 좋아해 집에 오면 펄쩍 뛰어 안길정도로 사랑을 표현해 준다며 만면 가득 웃음을 보인다.
“요즘 세대 부모들은 AS가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자식들 키워 시집장가 보내고 나면 또 손자들 키워줘야 하고, 부모 역할이 또다시 연장이에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말년에 어디서도 받지 못할 진한 사랑을 손자에게서 받으니 그것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지요.”
어렸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것은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이 씨는 손자를 통해 엄청난 에너지와 웃음을 얻는 노년의 삶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첨언한다.
손녀와 알콩달콩 만들 추억도 책으로 쓰고파
얼마 전 이창식씨에게는 또 다른 경사가 벌어졌다. 다름 아닌 귀염둥이 손자에 이어 어여쁜 외손녀를 보게 된 것. 이제 6개월에 접어든 손녀는 벌써부터 이 씨와 가족들에게 행복바이러스를 전파하는 복덩어리다. 연이어 손녀를 키우며 겪게 될 또 다른 경험과 시간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세 번째 책으로 나오게 될 것 같다며 넌지시 밝히는 이창식씨.
평생 책을 번역하면서 글을 써왔던 그에게 은퇴이후 자연스럽게 동화작가이지 수필가로 또 다른 인생을 살도록 해준 손자 손녀에게 이 씨는 어떤 ‘하찌’로 남고 싶을까.
“재영이(5세)와 희영이(6개월)가 커서 할아버지가 쓴 책들을 읽으며 그때의 시절을 좀 더 또렷하게 느끼고 함께 만든 시간을 행복한 추억으로 기억해 줄 수 있다면 좋겠어요.”
2년쯤 후엔 또 다른 이야기책으로 알콩달콩 손녀와의 추억을 오롯이 담아낼 ‘하찌’의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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