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공직에 몸담아 온 베테랑 형사 출신의 멘토 경찰관이 있다. 예리한 직관력과 포용력 있는 모습으로 강남 청소년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수서경찰서 스쿨폴리스(학교전담 경찰관) 반장 황병택 경위를 만나봤다.
피옥희 리포터 piokhee@naver.com
마음의 문을 연 아이들
“아저씨! 며칠 동안 어디 계셨어요. 제가 얼마나 찾았는데…”
3일째 애타게 ‘아저씨’를 찾던 한 학생이 황병택 경위를 보자마자 반갑게 내뱉은 첫 마디. 주변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아저씨를 못 만나서 아쉬웠다는 말을 덧붙이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속내를 털어놨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굳게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모습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다.
“맨 처음 만났을 때는 강압적인 부모의 훈육에 반항심을 표출하며 방황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교복을 입은 채 공중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저와 마주친 학생이었거든요. 무조건 훈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제가 먼저 그 학생에게 다가갔습니다. 함께 국밥도 사먹고 대화를 나누다보니 차츰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더군요. 그때부터 서서히 변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듯 황 경위에게 마음의 문을 연 청소년들은 일일이 다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물론 그중에는 여전히 부모와의 갈등과 학업 스트레스로 방황의 나날을 보내는 학생도 있고, 좀처럼 다가와주지 않는 학생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황 경위가 먼저 다가가면 신기하게도 마음을 열고 서서히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친구,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총 60개 학교 책임지는 스쿨폴리스
외부 행사 참가로 3일 내내 자리를 비웠던 황 경위를 만나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 걸까. 밝은 표정을 지으며 그 학생이 작별의 인사를 고했다.
“아저씨, 또 올게요. 제 페이스북 아시죠? 나중에 들러주세요.”
그렇게 한바탕 시끌벅적한 만남 후 그제야 차분하게 황 경위와 대화를 나눌 시간이 주어졌다. 초등학교 25개, 중학교 18개, 고등학교 16개, 특수학교 1개 등 총 60개의 관내 학교를 오가며 하루하루 바쁘게 보내고 있는 스쿨폴리스로서의 일상에 대해 먼저 물었다.
“수서경찰서에는 7명의 학교전담 경찰관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오전 7시 30분부터 8시 전후까지 학생들이 스쿨폴리스에 친밀감을 갖도록 학교 앞에서 등교 지도를 합니다. 또, 학교별로 찾아가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일환으로 직접 강의를 하기도 하고 실제로 학교폭력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와 피해자의 중재자적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직접 발로 뛰어다니는 수십 가지의 일이 있지요. 매일 발이 부르틉니다. 하하하.”
황 경위가 직접 보여준 다이어리 속에는 지난 3~4월 동안 ‘발로 뛴 흔적’이 고스란히 일과표에 남아있었다. 어느새 흰머리가 희끗희끗해진 50대가 됐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며 ‘내 나이는 한창 때’라는 말로 스쿨폴리스로서의 막중한 책임과 열정을 드러냈다.
문제아? 모두의 관심이 변화의 시작
스쿨폴리스 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때만해도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교사, 학생, 학부모 그리고 스쿨폴리스를 포함한 관내 여러 기관과 전문가들이 힘을 합쳐 함께 ‘행복한 강남 학교 만들기’에 동참하고 있다.
“흡연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다그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변화할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이 어른들의 몫이지요. 수서경찰서는 ‘강남구 보건소 금연클리닉’과 연계해 흡연 학생들의 금연을 돕고 있고, 강남구 청소년센터 내 ‘찾아가는 동반자 서비스’에 의뢰해 위기의 청소년들을 이끌어주고 있습니다. 또, 서울시 교육청 및 강남구 교육청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청소년들이 논현동 소재의 한 정신과의원에서 사이코드라마에 참여해 조금씩 치유해나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황 경위는 ‘어른이 먼저 손 내밀고 변화해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부모의 욕심 때문에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우며 잘못된 방법으로 훈육하는 강남 학부모들에게 전하는 말도 있지 않았다.
“태어날 때부터 문제아는 없습니다. 문제적 부모가 있을 뿐이지요. 강남은 학구열이 높다보니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이 부모의 높은 기대치에 이르지 못해 좌절하고 감정적으로 골이 깊어지고 쌓여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방황하는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부모의 따뜻한 사랑임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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