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늦가을, 자칭 ‘못생기고 뚱뚱하며 키 작은 삼총사’가 김치버스 타고 400일간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 후 3년의 세월이 흘렀고 팀의 리더 류시형은 ‘김치버스 세계여행’을 시즌3까지 성공시킬 만큼 단단하게 성장했다.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는 닉네임 그대로 ‘내 맘대로 내 인생’을 신나게 질주중인 그에게 비결을 캐물었다.
요리사이자 여행 작가며 사진작가, 기획자의 삶을 동시에 사는 류시형이 좋아하는 다섯 가지는 여행, 사진, 요리, 사람, 술. 그의 인생 북극성인 5개의 키워드를 조합한 게 김치버스 프로젝트다. ‘요리사니까 한국을 상징하는 김치를 알리며 세계 곳곳을 여행해 보면 어떨까?’ 치기어린 아이디어가 발단이 됐다.
시간을 거슬러 유별난 DNA를 맘껏 발산한 그의 대학시절로 가보자. “부모님이 맞벌이라 어릴 때부터 혼자서 요리할 기회가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취미도 요리, 특기도 요리, 장래희망도 요리사였어요. 막상 대학생(경희대 조리과학과)이 된 뒤에는 요리보다 사진과 여행에 빠져 살았고요.”
달랑 3만원 들고 219일간 유럽 일대를 무전 여행할 만큼 배짱이 두둑했고 호기심이 남달랐다. 노숙생활부터 처음 만난 외국인과 부대끼며 그들의 문화를 속속들이 체험한 후 깨알같이 기록해 <26유로> 책을 펴냈고 여행 파워블로거가 됐다.
‘뭐 하고 살거냐?’ 송곳 질문의 답을 찾아나서다
“어느새 20대에 여행작가란 타이틀을 얻게 된 뒤부터 세계 구석구석을 협찬받아 여행 다니고 그런 노하우로 전국을 돌며 강연자로 살았어요.” 어느 날 강연장에서 만난 낯선 젊은이가 던진 “앞으로 뭐 하고 살겁니까?”란 질문이 그의 가슴에 아프게 박혔다.
“아뿔사! 여행과 강연으로 하루하루 바쁘기는 했지만 내가 원하는 삶은 아니었어요. 더군다나 5년 후, 10년 후 나의 인생 계획조차 없더군요.”
치열한 자기 반성의 시간을 보낸 뒤 진짜 꿈을 찾아 김치버스 팀을 꾸려 호기롭게 길을 나섰다. “김치버스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뤄진 ‘꿈’이에요. 여행하고 요리하고 낯선 사람들 만나고 멋진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 꿈은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400일간의 여행길은 희로애락이 뒤범벅된 롤러코스터였다. 여행경비는 아껴도 늘 모자랐으며 김치버스는 수시로 고장 나 애간장을 태웠다. 스페인에서는 도둑을 만났고 러시아에서는 비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으며 북유럽 고속도로를 달리다 죽을고비도 넘겼다. 허나 꿋꿋하게 고난의 행군을 이어갔다. 보석 같은 인연과 삶의 깨달음을 길 위에서 얻었기 때문에.
“모스크바 문화원에서는 손바닥 만한 도마와 무딘 칼로 밤을 꼬박 새며 김장 100포기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러시아 최고의 조리학교에선 한식 강의로 박수를 받았어요.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선 프랑스 미식가 100명에게 한식 뷔페를 멋들어지게 선보였지요. 요리사로서 꿈같은 경험들이 여행 내내 이어졌지요.”
김치버스 세계여행에서 인생 나침반 얻다
여행을 통해 그는 훌쩍 자랐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 기획력, 리더십, 여기에 글로벌 감각까지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한 대기업은 그에게 팀장자리를 제안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안정된 직장, 연봉 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자고 삶의 방향을 세웠어요. 인생의 길이 여러 갈래라는 걸 여행에서 배웠기 때문에 선택이 쉬웠지요. 무엇보다 김치버스에 애착이 컸고요.”
고난과 뿌듯함이 버무려진 김치버스 여행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첫 여행에서는 27개국 130개 도시를, 2012년 두 번째 여행에서는 한국, 일본 전역을 돌았다. 월드컵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던 올 5월부터는 남미 6개국을 100일간 돌며 김치버스 시즌3를 선보였다. ‘특별한 여행’에 목말라 하는 청춘들을 위해서는 여행학교도 열었다.
김치버스, 브랜드로 만들다
“김치버스 여행이 거듭될수록 베이스캠프가 필요하다는 걸 절감해요. 기업 후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거든요. 그래서 김치버스 브랜드 작업에 몰두하고 있어요.” 대학 3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경제적으로 자립한 그다. 생활비 벌랴 여행경비 모으랴 늘 고단한 하루하루지만 덕분에 비즈니스 촉을 벼릴 수 있었다고.
“신사동 가로수길 아웃랩에다 김치버스 팝업스토어를 내년 1월초까지 열어요. 김치를 활용한 멕시칸 요리를 선보이죠. 건대입구 근처에서도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중이고요.”
김치버스의 물꼬를 튼 뒤부터 예상치 못했던 기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모양이다. 인터뷰 당일날도 강원도 양양에서 꼬박 밤을 새고 올라오는 길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에는 윤기가 흘렀다.
“고단하지만 행복해요. 30대에 접어들었으니 앞으로 가정을 꾸리려면 돈도 벌고 안정된 기반을 갖춰야 겠지요. 앞으로 꿈과 현실의 간극을 잘 조율하며 살고 싶어요. 지인들이 말하는 ‘류시형답게’ 말이지요.” 자기 삶의 길을 스스로 만드는 법을 몸으로 터득한 그에겐 자신감이 차고 넘쳤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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