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대진고 ‘사고(思考) 뭉치들의 세상 만들기’ 다섯 번째 논문집 펴내

“연구하고 논문 쓰며 진로 찾아가요”

지역내일 2015-03-12

요즘 교육에 R&E(Research and Education)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R&E란, 학생들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조사 연구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나 논문을 쓰는 활동을 말합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가 되면서 비슷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차별화된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어 주목받고 있지요. R&E를 입시 트렌드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연구하는 것은 제대로 된 ‘진짜 공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공부를 하며 성장하는 우리지역 고교생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진로탐색-심화연구-논술 통합프로그램
일산 대진고(정하근 교장)에서는 2010년부터 창의자율수업으로 ‘1인 1소논문 쓰기’ 수업을 진행해 왔다. 일반 고교과정에 배정된 ‘창의자율활동’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모색하다 ‘진로탐색-심화연구-글쓰기’라는 맥락을 정하고 이를 실현해가는 방안으로 ‘사고뭉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고등학생이 소논문을 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인식만큼 낯설어 하는 학생들을 위해 자체교재를 개발했고, 매주 차근차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먼저 학생들에게 자신의 관심분야와 공부해보고 싶은 문제를 찾도록 했다. 또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줄 멘토를 찾고, 문제 해결 방법과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자신이 세운 계획을 바탕으로 학생들은 연구에 들어갔다. 저마다 주제가 다른 만큼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랐다. 다양한 체험활동과 캠프 참여, 과학실험, 탐구 등을 통해 학생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갔다. 그리고 이 과정과 문제에 대한 결론을 소논문으로 정리했다.
1년간 진행된 사고뭉치 프로젝트는 학년말 1,2차 심사를 거쳐 소논문을 평가해 수상하고, 그중 학년별 30편을 선발해 논문 발표대회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이렇게 해마다 한권씩 만든 논문집이 올해로 다섯 권 째다.  2014년도에는 1학년 150여 편, 2학년 300여 편 등 모두 450여 편의 논문이 완성됐다.
대진고 교육연구부 김정아 부장교사는 “비교과 영역인 자율 활동은 내신 관리에 밀려 소홀해지기 쉬운데 포기하지 않고 1년간 꾸준히 노력해 연구 성과물을 낸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며 “이 과정이 학생들의 진로 찾기에 의미 있는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진로 찾기의 밑거름
연간 진행되는 사고뭉치 프로젝트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성적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우리네 입시 환경에서 내신 관리와 프로젝트를 병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아직 입시에 여유가 있다고 느끼는 1,2학년 때는 그 중요성을 파악하기 어렵다. 3학년이 돼 수시 원서를 쓸 때 쯤 학생들은 비로소 그 중요성을 체감한다.
김정아 부장교사는 “학생들이 자소서를 쓸 때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이 바로 사고뭉치 프로젝트”라며 “그만큼 학생들의 진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교육 과정이다”라고 설명한다.
“관심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했던 다양한 독서와 체험, 연구 활동들이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논문이라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어떻게 살아야할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진로를 찾아가지요. 2년 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누구보다 아이들이 더 잘 느낀답니다.”
사고뭉치 프로젝트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 분야가 깊어지거나 확장되는 경험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정치 사회 분야에 관심이 많아 관련 진로를 고민하던 차에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심리학에까지 관심을 확장한 학생도 있다. 또한 경찰관을 꿈꿨다가 경찰수사대로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가기도 한다.
3학년 서하림 양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내 관심 분야가 무엇인지, 또 어떤 일을 해보고 싶은지 보다 명확해졌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운 것들이 진로 결정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사고뭉치 학생들 미니인터뷰


3학년 엄소목 양
논제 : 미소생태계를 이용한 은나노의 환경 유해성 평가



주변에서 많이 신는 은나노 등산양말을 보며 과연 은나노 양말이 안전한 것인지, 또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해 실험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특히 은나노가 수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수조를 제작해 살펴보며 일정 기간 관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결과가 중시되는 과학은 한 줄의 결과를 내기 위해 며칠씩 고생하며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지요. 실험준비 과정이 너무 많아 힘들긴 했지만 결국 실험결과 데이터가 나오고 눈으로 확인하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려서부터 경찰관이 꿈이었는데, 지금은 경찰수사대로 목표를 구체화해 실험과 연구를 지속해 볼 수 있는 진로를 찾아가려고 합니다.


3학년 신민준 군
논제 : 컴퓨터 없이 해킹하기



흔히 해킹이라면 컴퓨터의 보완시스템을 무너뜨려 정보를 빼내거나 변경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일상에서 컴퓨터를 통하지 않고 일어나는 해킹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이와 관련된 사례들을 사회공학 기법을 통해 제시하며, 많은 사람들과 개인정보유출과 그 심각성에 대해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1학년 때는 스마트폰 해킹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그때는 내 글이 타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글이라는 생각이 좀 부족했어요. 그래서 저만 아는 전문 용어로 발표를 했었지요. 그때, ‘논문은 일기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번 논문은 최대한 쉽게,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하려고 했습니다. 전문 용어를 일상어로 바꾸는데 많은 공을 들였고, 덕분에 이번 논문은 반응이 좋아 학년 대상을 수상했답니다.


3학년 서하림 양
논제 : 지역아동센터의 돌봄공동체 역할 고찰




4년 전부터 지역아동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제까지의 세계’라는 책을 읽고, 우리 전통사회의 돌봄 문화가 지역아동센터에서 복지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싶었습니다. 일단 제 프로젝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 아이들과 친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10개월간 44시간의 봉사활동 과정을 ‘봉사일지’ 노트에 기록하며 지역아동센터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했지요. 이 과정을 통해 지역아동센터의 현실적인 문제와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알게 됐습니다.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해 과거 공동체의 지혜를 현재와 미래에 활용해 보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3학년 박성환
논제 : 협력을 이용한 교내 매점 쓰레기 해결 방안



개인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에 길들여진 인간은 이기적이다. 21세기 우리가 갖고 있는 이런 고정관념과 달리, ‘펭귄과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에는 인간은 충분히 이타적이며 자율적인 협력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지난해 교내 쓰레기 문제가 불거졌을 때, 이 주장을 근거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강압적인 규제가 아니더라도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제가 기대했던 결론을 얻을 수 있어 만족스러웠어요. 평소 정치학과 사회학에 관심이 많았었는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심리학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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