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한해의 첫 큰달 즉, 으뜸달이라 하여 상원(上元)이라 불렀다. 여기서 달은 대지와 함께 풍요로운 생산의 기원과 의미를 상징하므로 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전통사회에서는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절기 행사로 취급하였다.
대보름의 달빛은 어둠, 질병, 재액을 밀어내는 밝음의 상징이므로 이날 마을의 수호신에게 온 마을 사람들이 질병, 재앙으로부터 풀려나 농사가 잘 되고 고기가 잘 잡히게 하는 동제를 지냈다. 정월대보름에는 부럼 깨물기, 더위팔기, 귀밝이술 마시기, 시절 음식은 복쌈이나 묵은 나물먹기, 오곡밥이나 달떡 먹기 등을 하였다. 또 설날이 가족 또는 집안의 명절인데 비해 정월대보름은 마을의 명절로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줄다리기, 다리 밟기, 고싸움, 쥐불놀이, 탈놀이, 별신굿 등 집단의 이익을 위한 행사를 하였다.
정월대보름의 다양한 세시풍속과 개인의 길흉화복을 비는 행사 가운데 안양지역의 세시풍속인 답교놀이가 있었다. 답교놀이는 다리를 밟고 다니면서 무병장수와 소망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에서 출발된 풍속으로 고려 때에는 답교놀이로 인해 아녀자의 풍습이 문란해지는 등 폐단이 있어 금기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는 절기풍속이었다.
예전에 안양지역에서는 석수동 만안교와 호계동의 14칸 나무다리(현재 호계교)에서 놀이가 펼쳐졌고, 때로는 과천의 무동답교놀이패와도 교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안양의 답교놀이는 귀신당날이라 부르는 음력 16일에 놀이를 즐겼다. 만안교 축조 후 안양지역 주민들이 이곳에서 해마다 음력 정월 초닷새부터 열엿새 사이에 답교놀이를 했다. 답교놀이를 하면 풍년이 들고 농사일에 허리와 다리가 아프지 않다는 풍속에 의해 행해졌다.
답교놀이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착취가 시작되면서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다가 인심마저 각박해져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풍습이 점차 사라졌기 때문에 1920년까지 실시되다가 이후 사라졌다고 한다. 놀이는 길놀이를 시작으로 마당놀이-선소리꾼 놀이-대동놀이-다리 밟기-줄다리기-짚불놀이 순으로 구성되었는데, 이 답교놀이는 1987년 무용평론가 이병옥 용인대교수에 의해 현지조사로 대본이 작성되어 1989년 경기도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안양시의 대표 전통 민속놀이로 경연에 참가해 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정월대보름 달맞이 축제 만안답교놀이는 28일 만안교에서 16시부터 진행된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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