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을 맞아 성호기념관에서 특별한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는 안산을 대표하는 인물인 성호이익 선생과 그 가문에 대한 이야기다. 위대한 학자가 배출되기까지는 그에 버금가는 위대한 스승이 있어야 하듯이 조선 후기 사회 변화를 주도했던 실학사상의 성립과 발전에는 여주 이씨 가문의 가학(家學)의 전통이 있었다. 이상의, 이하진, 이서, 이익으로 이어진 가학(家學)의 유물을 따라가다 보면 따스한 음성으로 학문을 전해주던 아버지와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런 따뜻한 시선은 관습을 뚫고 모든 사람을 연민으로 대했던 실학의 근본 정신이 되었다. 000해설가의 도움으로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가학의 전통을 세운 이상의와 이하진
여주 이씨 가문은 집안사람이 스승이 되어 학문을 가르치는 가학(家學)이 전통이었다. 쇠퇴한 가문을 일으킨 사람은 이익선생의 증조부인 이상의. 이상의는 안산군수로 있던 3남 이지정에게 보낸 서찰과 ‘청풍계첩’에 칠언율시를 남겼다. ‘청풍계’란 지금 서울 인왕산 청운초등학교 일대를 일컫는 지명이다. 이 곳에 선원 김상용(1561-1637)이 별장을 조성하면서 장안의 명소가 되었고 내놓으라 하는 문인 학사들은 이 곳에 모여 시와 글을 뽐내는 장소였다. 그들의 글을 모아 서첩으로 엮은 글 속에 이상의의 칠언율시가 등장한다.
이익의 부친인 이하진은 중국에서 사온 수 많은 책을 남겨 후학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 1673호로 지정된 이하진의 ‘천금물전’ 원본이 전시되고 있다. 천금물전이란 “천금을 주어도 그 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10권의 책으로 구성된 천금물전에는 자신이 좋아한 물건, 시, 독서와 풍류를 즐겼던 문인들의 일화가 담겨있다.
전시는 이하진의 글과 그가 좋아했던 사물을 나란히 배치해 관람객이 이하진의 마음 따라가도록 돕는다.
당쟁의 화를 입고 거문고로 시름 달랜 이서
성호 이익의 집안은 당쟁으로 큰 화를 입는 중에도 가학의 전통은 이어졌다. 이하진이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고 이익의 둘째 형 섬계 이잠이 참혹하게 장살을 당한 후 이익의 교육은 셋째형 이서가 맡았다. 아버지와 형의 죽음으로 관직에 나갈 길이 막힌 옥동 이서는 거문고로 시름을 달랬을 것이다.
전시실에는 이서의 거문고 ‘옥동금’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해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옥동금 뒷면에는 ‘금강산 만포동에서 벼락을 맞아 고사한 오동나무를 얻어 거문고를 제작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관람객이 거문고 아래 글까지 읽을 수 있도록 거울 위해 비스듬이 전시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거문고는 지금이라도 당장 소리를 내며 전시회장을 울려퍼질 듯 하다.
이서는 글씨에도 능했다. 특히 그는 집안의 서풍을 그대로 따라하지 않고 ‘동국진체’라는 서법의 이론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가학의 전통을 ‘실학’으로 꽃 피운 이익
아버지의 유배지에서 태어난 이익은 2살 때 안산으로 들어온 후 생애 대부분을 안산에 머물며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가학의 전통과 아버지가 남긴 서책, 형의 가르침을 받아 그의 학문의 넓이는 우주로 뻗어나갈 정도로 방대해졌다. 자연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를 탐구한 수백여권의 저서를 남겨 조선후기 실학의 디딤돌이 됐다. 대표적인 실학자 정약용은 “나의 큰 꿈은 성호의 글에서 깨달은 것이 많다”는 글을 남겼다.
전시장에서 만나는 이익 선생은 꼬장꼬장한 선비의 모습이 아니라 너그럽고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한 없이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손자의 첫 돌을 맞아 기쁨에 겨워 글을 짓고 노비의 무덤을 찾아 제문을 지어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 그는 산행을 즐기는 노비에게는 휴가를 보내 주는 등 당시 신분사회에서는 감히 생각도 못할 일들을 실천했다. 이익선생의 삶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모임이 바로 ‘삼두회’다. 술과 고기 대신 콩으로 만든 콩나물, 두부, 콩 죽으로 잔치를 마련한 것이다. 그의 검소한 삶을 보여준다.
전시회 한 켠에는 이익 선생의 방을 재현한 ‘선비의 방’이 마련되어있다. 방에는 책장과 경상, 책 반닫이가 놓여있다.
이번 전시회는 오는 3월 8일까지 진행된다. 성호기념관 이세나 학예사는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을 시민들이 관람하기 쉽도록 눈높이에 맞춰서 전시했다. 전시를 관람 한 후 기념관 건너편 이익선생의 묘소도 참배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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