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발산동 조용한 주택가 골목에는 예쁜 간판이 눈에 띄는 아담한 가게가 있다. ‘그린키친’과 ‘부부0325’. 나란히 붙어있는 두 가게는 출입문은 따로 있지만 안으로 깊숙이 들어서면 주방은 하나로 트여있다. 주점의 이름 ‘夫婦(부부)0325’처럼 두 가게는 둘인 듯 하나이고 하나인 듯 둘이다. 도대체 이 가게의 정체는 뭘까? 이곳의 주인장 박정윤 씨를 만나보았다.
문소라 리포터 neighbor123@naver.com
젊은 나이에 요리사로 참 많은 일을 겪었죠
두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정윤 셰프는 예상보다 훨씬 젊은 나이였다. 37세. 그는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아내 김근애 씨(30세)와 케이터링(Catering, 출장 음식) 서비스업체인 ‘그린키친’과 우리 전통주를 주로 파는 주점 ‘부부0325’를 운영하고 있다.
“제가 요리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인천 월미도에서 오랫동안 횟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고단한 삶을 보고 자란 터였다. 일식 요리사로 일하던 친척 형의 제안으로 재수생 시절에 일본 요리를 시작한 박 셰프는 전문대 식품영양학과에 입학했고 학교 앞 참치집과 술집, 나이트클럽 주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요리를 배웠다. 공군 취사병으로 제대하자마자 인천에 있는 로얄호텔 일식당에 실습을 나갔다. 이후 백화점 푸드코트, 워커힐 호텔, 골프 클럽하우스 등의 주방에서 10여 년 간 경력을 쌓아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벽 앞에 서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에서 인생을 보내고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졌죠.”
한발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에 유학을 준비하다 사정이 생겨 유학을 포기하고 학원에 다니며 케이터링을 배웠다. 실습을 나갔던 케이터링 회사에 스카우트돼 1년 정도 일하다가 친구들과 ‘세발자전거’라는 이름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홍대 인근에 오픈했다. 하지만 레스토랑은 잘 되지 않았다. 잠시 문을 닫고 고민하던 그들에게 어느날 운이 찾아왔다.
“당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제식품대전에서 슬로푸드 운동을 하던 이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좋은 식자재를 사용해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럼 우리가 해보자’며 친구들과 마음을 모으고 레스토랑의 메뉴를 양식에서 한식으로 전환했어요. 술도 그에 어울리는 막걸리를 내놓구요.”
2010년 당시 마침 막걸리 붐이 일어 그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주점으로 이름을 날리며 헤이리에 2호점을 오픈했다. 하지만 그곳은 잘 되지 않았다.
“내공이 탄탄히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너무 빠르게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액운에 이어 행운도 뒤따랐다. 박 셰프는 당시 그곳의 직원으로 일하던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하고 헤이리에서 피자&파스타집을 운영했다. 그리고 푸드스타일리스트인 아내와 그곳에서 ‘그린키친’이라는 이름으로 케이터링 사업도 시작했다. 헤이리에 위치한 회사와 갤러리, 페스티벌 등에 케이터링 서비스를 하면서 그린키친의 이름은 차츰 퍼져나갔다.
타인들과 소통하고파 동네골목에 연 주점 ‘부부0325’
비록 문은 닫았지만 ‘세발자전거’를 운영하며 제대로 된, 좋은 음식을 만드는 일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박 셰프는 케이터링 서비스에 사용하는 식재료도 새우를 제외하고 모두 국내산을 사용했다. 디저트로 나가는 쿠키 하나까지 직접 만들어 냈다. 그러던 중 주점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1년 정도 서울 변두리와 일산 등 조용한 곳으로 가게 자리를 보러 다녔죠. 손님들과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소통을 하려면 번화가는 어렵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드디어 그는 지난해 5월 아내와 함께 정발산동에 케이터링 서비스업체인 ‘그린키친’과 주점 ‘부부0325’를 오픈했다. 한 공간을 둘로 나눠 한쪽은 남편인 박 셰프가 좋아하는 주점을, 다른 한쪽은 아내 김근애 씨가 좋아하는 쿠킹 작업실 겸 케이터링 음식을 장만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부부0325는 점차 괜찮은 주점으로 소문이나 손님들의 발길을 끌게 됐다. 그동안 내공을 쌓은 덕분 아니냐고 하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인 것 같아요. 메뉴 하나하나에 정성은 물론이고 이야기가 담겨야 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또 “요리하는 사람은 전달자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자들이 정성들여 재배한 바른 먹거리를 잘 요리해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그래서 식재료가 더욱 중요해요. 재료는 거짓말을 하지 않거든요”라고 덧붙였다.
바른 먹거리로 정성담긴 음식 만들어 내는 전달자
부부0325에서는 라면에도 자연방사 유정란을 넣어 끓여내고 돼지갈비나 보쌈 등은 지리산 흑돼지 버크셔K를 받아서 요리한다. 두부는 가마솥에서 쪄낸 수제 유기농 두부를, 어묵은 부산에서 생선 함량이 높은 제대로 된 어묵을, 문어와 골뱅이는 울진의 한 어부한테 직접 받아다 쓴다. 고정 메뉴 외에도 그때그때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공수해와 ‘오늘의 메뉴’를 만들어 내놓고 있다. 구룡포 과메기, 통영의 석화, 여수 가막만 홍합탕, 순천만 피꼬막 등등. 12월에는 제주 대방어가 들어올 예정이다.
“생산들도 구매자가 꾸준히 확보된다면 판로에 대한 고민 없이 좋은 먹을거리의 생산에만 힘쓸 수 있고, 우리는 그것을 가져다 음식을 만들 수 있고 손님들은 좋은 음식을 합리적 가격에 즐길 수 있으니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죠.” 그야말로 상생과 공존의 실현이다.
전국에서 오는 20여 종의 막걸리, 28종류의 전통주를 선보이며 직접 거래하는 식재료와 막걸리 업체를 합하면 50~60군데.
“물론 힘들지만 이 또한 생산자들과의 관계이자 소통이기 때문에 보람 있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올바른 음식문화를 이곳에서 천천히 풀어내면서 더욱 탄탄하게 다지고 싶어요.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를 데리고 와서, ‘할아버지도 너 만할 때 여기서 먹었단다’라고 얘기해줄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위치 일산동구 정발산동 709-1
문의 070-8272-3108 블로그 blog.naver.com/bubu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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