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훈의 아빠심리학 31

아빠의 소외감

지역내일 2014-06-16
아빠는 오늘 기분이 좋다. 장사가 잘 되니 오랜만에 야식 생각이 난다. 아이들을 제대로 본 지도 오래 된지라 가족들과 야식으로 치킨이나 같이 먹으면 좋겠다. 그런데 전화를 받은 엄마는 저녁 다 먹었는데 무슨 치킨이냐고 성가시다는 반응을 보인다. 집에 가서 애들에게 말하니 아이들의 반응도 그다지 폭발적이지 않다. 작은 아이는 어제 먹었다고 하고, 큰 아이는 치킨보다는 게임이 더 좋은 눈치다.
아빠는 순간 멍해진다. 기분이 나쁘다고 하기도 그렇고, 배신당한 느낌이지만 배신을 당했다고 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상황이다. 평소에 아빠가 없을 때는 잘도 시켜먹고, 퇴근하면 냄새만 풀풀 나게 하더니 아빠가 같이 먹자니까 다들 빼니 아빠의 섭섭함, 아니 배신감은 당연하다. 아빠는 ‘일한다고 집에 좀 신경 안 썼더니 마누라랑 애들이랑 지들끼리 노는구나’, ‘뭐 이런 식이면 나도 그냥 따로 놀아야지’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겉돌기 시작한다. 그나마 취미가 확실하게 있거나 술친구라도 있으면 좀 낫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가족들조차 받아주지 않는 외로운 사람이 된다.
이럴 때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족들은 정말 아빠를 따돌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일을 하느라 그랬다고 쳐도 가족들과 접촉 시간이 적으면 가족들을 잘 알 수가 없다. 가족들이 저녁을 언제 먹는지, 아이들은 치킨을 언제 먹고 싶어 하는지, 치킨보다 게임이 좋을 때는 언제인지, 아이에게 말할 때는 어떤 말투로 말해야 하는지 등등.
아빠가 혼자 기분이 좋아져서 치킨을 먹자고 할 때, 엄마와 아이들은 치킨을 먹을 수 없는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아빠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치킨 먹기를 거부한다고 해도 그것이 아빠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치킨에 대한 거부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시간이 없는 아빠는 어쩌다 한번 시간이 났을 때 오버해서 아이들에게 잘 하려고 한다. 그러나, 바쁜 아빠에게 익숙한 아이들에게는 어쩌다 한번 만들어진 시간에 아빠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이나마 가족들과 보내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가족인가?
가정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 바쁜 아빠들은 짜투리 시간을 잘 써야 한다. 가족들은 아빠가 쏘는 치킨에 열광할 수도 있고, 냉랭할 수도 있다. 열광한다면 그냥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러나 반응이 없을 때는 엄마나 아이들 각자가 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이다.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아빠도 그냥 사생활을 즐기면 된다. 아빠가 집에 있는데도 평소와 같이 게임하는 시간을 방해받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로 치킨을 사주는 것보다 더한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 

지우심리상담소 성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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