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한파가 지나자 찬바람이 더욱 거세다. 길가의 가로수들은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겨울 외투가 어느 때보다 반가운 걸 보니 이젠 정말 겨울이 왔나보다. 이대로 가을을 보내야 하나? 떠나는 가을이 못내 아쉬웠던 어느 날, 안양에서 차로 1시간을 달려 ‘파주출판도시’에 도착했다. 출판사뿐 아니라, 쇼핑몰과 북카페, 박물관, 전시관 등이 도시 전체를 채우고 있는 이곳은 전원주택단지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건물과 풍경이 눈길을 끌었다.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울린 공간, 파주출판도시
파주출판도시는 국가산업단지이다. 이곳은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출판인들의 순수한 뜻으로 계획되고 추진된 출판문화공동체로 국가산업단지라는 딱딱함 보다는 문화공간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도시 전체는 거대한 건축 전시관처럼 예술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자리하고 있다. 또 곳곳에 조성돼 있는 길들은 외국 도시를 연상케 하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1897년에 설립된 근대 서점 ‘회동서관’을 기념해 이름 지은 ‘회동길’과 1884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출판사이자 인쇄소인 ‘광인사’를 기념해 명명한 ‘광인사길’은 다양한 문화공간을 둘러보며 산책하기에 그만인 곳. 걷다보면 지식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출판 도시 주변은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천혜의 자연생태 보고로 도요새, 물떼새, 저어새, 재두루미 등 멸종위기 조류와 다양한 생물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렇듯 파주출판도시는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공간으로 그 안에 있으면 쉼과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
천장까지 뻗은 서고에 20여만 권의 기증도서가 가득, ‘지혜의 숲’
파주출판도시에서 꼭 들러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는 명소는 ‘지혜의 숲’이다. 아시아 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위치한 지혜의 숲은 20여만 권의 기증도서가 채우고 있는 개방형 문화 도서관이다. 세 부분으로 나눠진 공간은 각각의 특성에 맞게 기획돼 방문자들을 기다린다.
우선 ‘지혜의 숲1’은 국내의 학자, 지식인, 전문가들이 기증한 도서가 소장된 공간이다. 기증자가 평생 읽고 깊이 연구한 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기증자의 삶을 책을 통해 보여주는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은 서고 가득히 개인이 기증한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고, 중간 중간 기증자의 이름을 달아 표시해 놓은 것을 보니 숙연함마저 느껴진다.
‘지혜의 숲2’는 출판사 기증 도서 코너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출판사들의 다양한 책들이 기증을 통해 소장돼 있다. 출판사명이 적힌 코너에서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책들을 볼 수 있어 이들의 역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 서고 중간에는 큰 테이블 여러 개와 함께 커피와 차, 샌드위치 등을 판매하는 카페가 자리해 북카페처럼 꾸며놓았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거나 책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등 자유롭게 책과 여유를 누릴 수 있어 아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머무르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좁은 통로를 지나 마련된 ‘지혜의 숲3’은 역시 출판사가 기증한 도서를 소장한 공간이다. 이들 중 유일하게 24시간 문을 연다. 도서관 한편에 큰 소파를 놓고, 중간 중간 편하게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도록 구성해 놓아 마치 개인 서재처럼 아늑함이 느껴진다.
지혜의 숲에는 ‘권독사’라는 특별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다. 권독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책을 안내하고 권유하면서 공간소개도 하고, 책을 보호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말한다.
지혜의 숲 곳곳에 배치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된다. 책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 누구나가 권독사가 될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자원봉사 활동에 나서고 있다고.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매하기에도 좋아
파주출판도시는 다양한 출판사들이 자리하고 있는 만큼 저렴하게 책을 구매할 수도 있다. 출판사 건물에 위치한 매장이나 전문 서점 등에는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90%까지 할인된 가격으로 책을 살 수 있다. 서점들은 책을 판매하는 것 외에도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나 어린이 놀이 공간, 체험강연과 세미나실 등을 함께 보유한 경우도 많아 서점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 즐길 수도 있다. 또 싼 가격의 중고서적을 판매하는 헌책방도 여러 곳 있어 도서 구매 선택의 기회가 많은 것도 좋다. 출판도시에 위치한 출판사들과 서점들의 면면을 알기 위해서는 파주출판도시에서 만든 무료안내지도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한 참 붐볐던 이곳은 겨울로 접어들며 다시 여유를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과 들러 책과 함께 자연을 즐기기에 더없이 좋아 언제 들러도 휴식과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재윤 리포터 kate2575@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