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하면 대개 성공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여러 교육기관을 중심으로 ‘자서전 쓰기’ 강좌를 하는 곳이 늘고 있습니다. 이는 지나온 삶을 글로 남기고 싶은 이들이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겠지요. 특히 시니어들의 자서전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 모릅니다. 전쟁과 가난 등 질곡의 현대사를 지나온 그들의 경험은 가슴 속에 담아두기엔 맺고 풀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을 테니까요. 매주 금요일 오전 일산노인종합복지관 2층 강의실에서는 이렇게 나를 찾아가는 여행에 푹 빠진 만학도들의 열기로 가득합니다. 지난 시간 잘 살아왔는지, 또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런 질문에 대한 해답을 ‘글쓰기’를 통해 찾아가는 멋진 시니어들. 그들은 일산노인종합복지관 호수복지문화대학교 ‘자서전론’ 수강생들입니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자서전, 내 안의 이야기 정리
매주 금요일 열리는 ‘자서전론’은 지난 2001년 호수복지문화대학교 개교와 함께 시작된 강좌. 자서전론 강사는 1993년 동서문학 신인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0년 시집「먼지는 무슨 힘으로 뭉쳐지나」, 2010년「체크무늬 남자」를 펴낸 정복여 시인이다. 현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출강하고 있기도 한 정 강사는 “처음 자서전론을 시작했을 때는 강좌를 폐강해야하나 할 정도로(웃음) 수강생이 많지 않았지요. 하지만 일기를 쓰고 나중에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재미있고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지나온 삶을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그런 특별함을 남기고 싶은 분들이 몇 년 사이 많아진 것 같아요”라고 한다. 정 강사는 또 “정규대학의 교육시스템과 같이 4년제 8학기로 운영되는데 중간에 잠시 병환 때문에 쉰 적도 있지만 2001년 첫 개강 때부터 지금까지 수업을 듣는 분도 있고, 보통 3~4년 씩 수업을 듣는 일이 대부분이죠. 특히 예전에는 대부분 여성 수강생들이 많았는데 5~6년 전 부터 남학생(웃음)들 수강이 많아졌고 또 열정도 대단합니다”라고 덧붙인다.
정 강사의 말대로 지난 금요일 인터뷰를 위해 잠시 강의를 청강하는 동안에도 시니어들의 면학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우선 살아오면서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한 번 짧게 써 보라는 강사의 말에 기억을 더듬는 수강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이어 두 분의 어르신이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 꿈을 포기했을 때 마음 아팠던 일, 또 어렵게 원하던 자격증을 땄을 때 기뻤던 기억을 발표하는 동안 수강생들의 표정에도 회한과 기쁨이 교차되어 지나갔다.
마음의 상처도 치유되고 기억력도 좋아져
수강생들이 전하는 자서전에 대한 의미는 한결 같았다. “유명인만 쓰는 자서전? 요즘은 그런 얘기 통하지 않아요. 자서전이라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나온 이야기를 정리하는데 의미가 있지. 우선 심리적 치유 효과가 커요. 내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다보면 과거의 나랑 화해가 돼. 상처 입고 아팠던 일들을 견디어낸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고...그리고 무엇보다 기억력이 좋아져요. 나이가 들수록 떨어지는 것이 기억력인데 어릴 때 일부터 하나씩 기억해내려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집중력이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져요.”
정 강사는 “강의시간에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신이 모르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고, 서로 동시대를 살아온 어르신들이다 보니 시대적으로 경험했던 일들에 대한 진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자서전론 수강생들의 유대감이 돈독하답니다. 그런 유대감으로 수강생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함께 문집을 내고 있고, 수강생들 중 자서전을 낸 분들도 6~7분이나 됩니다”라고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니 문득 어떤 책에서 읽은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작가다’라는 문구 하나가 떠올랐다. ‘마음 속 얘기를 책으로 쓰면 열 댓 권은 나올 것’이란 시니어들의 그 이야기, 모두 아름다운 자서전으로 완성되기를 기대해본다.
>>>미니인터뷰
“호수복지문화대학교가 개교하던 2001년 ‘문학이론’ 강좌에 이어 ‘자서전론’을 맡고 있어요. 문학이론을 듣는 이들이 자서전론을 듣기도 하지만, 자서전은 시나 수필에 비해 문학적 소양이 없어도 강의를 들으면 그리 어렵지 않아 좀 더 쉽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내는 자서전은 출판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남기고 싶은 목적이라 거기에 맞게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하시던 분들도 커리큘럼에 따라 배우다보면 내 안에 이런 장편소설이 있는 줄 몰랐다고 하시죠(웃음)”
정복여 강사 (56세)
“내가 이과출신이라 글쓰기에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강의를 듣다보니 전국어르신백일장에 나가 상도 타고, 지난해엔 팔순을 기념해서 ‘못 다한 이야기’란 자서전도 내게 됐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밥상머리교육을 많이 받았는데 명심보감 등에 나오는 이야기도 그때 많이 배웠죠. 정치가나 사업가처럼 홍보용이 아니라 내가 배운 가르침을 아이들에게 자서전을 통해 전해 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윤백중 씨 (81세)
“평소 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교직에서 퇴직한 후에 백일장 등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수상도 하고, 또 관심이 있어서 자서전론을 듣게 됐는데 너무 좋은 공부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삶을 재조명하고 앞으로의 삶을 리셋팅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자서전을 씀으로써 인생을 더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고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순자 씨 (70세)
“문학이론과 자서전론을 듣고 있는데 무엇보다 정복여 선생님 강의가 좋습니다. 현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곳에서 14년째 수업을 맡기 힘든데 감사한 일이지요. 교재도 직접 만들어 쉽게 배울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아요. 전 독서와 또 공직생활을 하면서 문서작성을 하던 경험들이 글을 응축하고 집약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자서전이 나올지 저도 기대가 됩니다”
유성봉 씨(75세)
“문학공부를 하면서 백일장에서 수상도 하고, 현재 실버타임스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남의 이야기에 둘러싸여 정작 나의 이야기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죠. 언젠가 나를 위한 자서전을 완성할 목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자서전을 준비하다보면 기억력이 좋아지니 시니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어요”
이진영 씨(7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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