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나뭇잎 냄새가 그리운 가을이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 걷기 좋은 계절, 남태령 옛길을 찾아가 보자.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의 남태령 옛길은 도보로 약 20여 분이면 걸을 수 있는 짧지만 고즈넉한 길이다. 한양에서 충청, 전라, 경상도로 통하는 유일한 도보길 이었던 이곳의 원래 이름은 여우고개였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 정조 대왕이 사도세자의 능원으로 행차할 때 잠시 쉬며 고개이름을 묻자 과천현 이방 변 씨가 임금께 속된 이름을 아뢸 수 없어 남행할 때 나오는 첫 번째 큰 고개라는 의미에서 남태령이라 아뢴 이후 현재까지 남태령 옛길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는 아쉽게도 옛길의 절반 정도는 사라졌지만, 옛날 사람들이 걸어온 길이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남태령 옛길은 남태령역에서 십 여분 이상 걸어야 한다. 가장 손쉽게 이정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인근의 음식점 ‘원주 추어탕’이다 , ‘원주 추어탕’을 기점으로 바로 옆쪽에 남태령 옛길이 펼쳐진다. 남태령 옛길의 시작은 작은 쉼터, 푸르른 나무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발밑에 밝히는 흙은 물기를 머금어서인지 폭신하고 보드랍다. 바로 위쪽 도로의 시끄러운 소음도 짙푸른 녹음 사이에서 잠시 조용해진다. 인적이 드문 이곳, 짹짹 새소리 사이로 벤치 아래 떨어진 과자 한 조각을 물고 힘차게 나아가는 개미가 쉼터의 주인이다. 오붓한 쉼터를 지나치고 나서는 잠시 잠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여기가 옛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좌우에 주택가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길이라 고민하지 않고 한 방향으로 쭉쭉 나아가면 다시 고요하면서 한적한 분위기를 찾을 수 있다. 햇볕은 따스하고 앞서 다녀간 사람이 매어놓은 것인지 초록색 길 표시 끈이 유독 반갑다. 오솔길 옆 공간을 활용한 작은 밭도 눈에 띈다. 알뜰한 공간 활용, 농사 한번 지어보지 못한 서툰 눈길이지만 반짝이는 파와 깻잎 뒤 인정 많은 주인장의 손길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태령 옛길의 끝쪽에는 계단이 하나 있다.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을 하나하나 밟고 올라가면 과천루가 보인다. 과천루는 좌우로 청계산과 관악산이 감싸고 있는 과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과천 8경 중 제5경 남령망루는 ‘남태령 망루에서 바로보는 과천’을 말한다. 과천루의 번듯한 모습은 든든하지만 올라가지 못하게 되어 있어 남태령을 내려다 볼 수 없는 것은 매우 아쉽다. 과천루까지가 남태령 옛길이다. 과천루 앞 벤치는 산책을 마무리 짓기 좋은 곳이다. 산책이 짧았다면 더 나아가도 좋다. 남태령 옛길은 삼남길의 시작과 겹친다. 과천루를 지나 구불구불 관악산 둘레길로 더 걸어가는 것도 즐겁다. 하지만 일단 되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한 번 더 같은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멋들어진 산책길을 기대했다면 오히려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남태령 옛길이라는 이름처럼 소박한 길이 길가에 핀 이름 모를 꽃처럼 정겹고 따듯했다. 걷기 편안한 길이라 굳이 도보 복장을 갖추지 않아도 충분히 걸을 만한 곳이라는 점도 장점이다.
주윤미 리포터 sinn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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