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한 낮의 햇살은 따갑지만 어느 듯 차갑게 식은 바람이 귓가를 지나며 가을이 왔음을 속삭인다. 오곡백과가 풍성히 익어가는 계절이기 때문인지 가을은 마음까지 풍요롭게 한다.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도 하루쯤 시간 내서 이 가을을 만끽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다. 사실 안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을을 만끽하기에는 한 나절 아니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황금빛으로 물든 본오동 들판을 바라만 보아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안산 곡창지대 황금색으로 물들다
안산시 농경지의 70%를 차지한다는 본오뜰의 넓이는 2.64㎢. 본오뜰에서 생산되는 쌀은 안산지역 초 중 고등학교 급식쌀로 제공될 정도이니 과연 안산의 곡창지대라 불러도 좋을 규모다. 본오뜰은 생명의 근원인 쌀을 생산하는 것 이외에 또 다른 역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거대한 창이라는 것.
해안로를 따라 본오뜰을 바라보며 출퇴근 하는 반월공단 사람들은 흙을 갈아엎고 모내기 풍경을 보며 봄을 실감하고 하루 하루 짙어지는 녹색을 보며 ‘날은 더워도 벼는 잘 익겠구나’하며 위로 아닌 위로의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 본오뜰이 튼튼한 벼 이삭을 품고 추수를 기다리고 있다. 가을 들녘은 금빛으로 물들어 파란 하늘아래 황금색 주단을 펼친 듯 햇살아래 넘실거린다.
자투리 땅 놀리지 않는 부지런한 농부들
시원한 바람이 부는 주말 본오동 들판길을 찾아 나섰다. 집에서 본오뜰까지는 자전거로 30여분. 수변공원을 지나 해안로길을 따라 본오동 준공업단지에서 본오뜰 진입로를 찾았다. 본오뜰 진입로는 본오아파트 앞 주차장 옆 사잇길을 이용했다. 마침 논에 나가는 어르신께 물어 겨우 찾은 길이었다.
차를 타고 다니며 훑어만 보던 본오뜰은 막상 가까서 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넓다. 논길 옆에는 자투리 땅에 심은 콩이 익어가는 중이다. 멀리서 봤을 땐 벼만 자라는 줄 알았던 본오뜰. 자투리 땅에 심은 콩이며 파. 팥, 고추 등 부지런한 농부의 손길이 곳곳에 배어있다. 본오뜰의 농부들은 대부분 본오동에 거주한다. 도시에 살고 있는 진짜 농부들은 셈이다.
마침 이른 벼베기 작업 중인 가족들을 만났다. 직장을 다니며 아버지 일손을 돕기 위해 논에 나왔다는 30대 여성. “아버지 말씀이 다행히 큰 태풍 한 번 없어서 벼는 풍년인데 강한 바람에 벼가 쓰러져 예상보다 일주일 먼저 추수를 하게 되어 아쉬워하신다”며 “힘들게 땀 흘려 농사 지으신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며 넉넉한 웃음을 웃어 보인다.
콤바인을 운전하는 농부의 얼굴에는 주름이 지긋한데 운전 솜씨만큼은 자동차 레이서 뺨칠 수준이다. 코너를 돌 때도 자로 잰 듯이 벼 한 포기도 놓치지 않고 깔끔하게 거둬들인다.
이달 중순부터 말까지 벼베기 진행
농부의 솜씨에 감탄하며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얼굴 가까이 잠자리 떼가 날아왔다 멀어지며 벼 이삭 사이에 숨은 작은 벌레를 잡느라 분주하고 그 잠자리를 노리는 제비들까지 바삐 움직이는 가을이다.
논둑 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고추 따는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본다. 요즘 사는 건 어떤신지, 고추농사 지어 뭐 하실 건지. 실없는 질문에도 혼자 일하기 심심하셨는지 대답해 주는 할머니. 자리를 털고 일어나자 집에 가서 찍어 먹어 보라며 풋고추 한 움큼을 따서 주신다. 가을 여유를 즐기고 싶어 찾은 본오뜰에서 할머니의 인심까지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본오뜰 황금 들판을 가까이에서 즐기고 싶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다. 벼베기 작업이 오는 13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10월 중순부터 이달 말까지가 벼베기 철이다.
자전거 끌고 다녀와도 좋고 걸어서 들판을 거닐어도 덥지 않은 계절이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