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전국의 각 지방자치단체, 도서관, 학교 등지에서는 ‘독서의 달’인 9월을 맞이해 풍성한 문화행사가 한창이다.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 교육이 진행되고 있는 강남시니어플라자를 찾았다. 김춘수 시인의 ''꽃''을 낭송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건물 전체로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생소하지만 정겨운 단어, 바지랑대
4층 강의실에서는 20여명의 어르신들과 이송은 강사 그리고 두 명의 사회복지사가 수업준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가 적힌 포스터와 녹음기, 가위와 풀도 보인다. 어르신들은 초등학생들처럼 준비물을 책상위에 나열해놓고 상기된 표정으로 앉아있다.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잔뜩 기대에 부푼 모습이다.
"오늘은 시에 대해서 공부하겠어요." 동화구연가 이송은(55세) 강사가 유쾌한 음성으로 말문을 연다. 강사가 준비해온 파란색 켄트지에는 윤석중 님의 ''다리''와 ''퐁당퐁당'', 김춘수 님의 ''꽃''이 일목요연하게 적혀있다. 한 목소리로 시를 읽고 느끼고 배경설명을 들으며 어르신들은 즐거워한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뛰놀던 개울가, 온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을 먹던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시절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린다.
''한 발로 서있는 건 바지랑대''. 윤석중 님의 시 ''다리''의 맨 마지막 구절에 ''바지랑대''가 등장한다.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생소한 단어이지만 강사와 어르신들은 바지랑대에 얽힌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앞으로 나와서 시낭송하실 분 안 계세요?" 강사의 요청에 문영자(75세) 어르신이 가만히 손을 든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긴장한 듯 바르르 떨린다. "학창시절에는 시인이나 작가를 꿈꾸던 문학소녀였지요. 비록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이 봉사단에 합류해 책과 시를 읽어주면서 더없는 행복감을 느낀답니다."
봉사활동 중에 사용할 책자도 직접 만든다 ?
이제는 현장에서 실제로 책을 읽어줄 때 필요한 간단한 책자를 만드는 시간. 켄트지를 책 모양으로 여러 번 접은 다음, 오늘 배운 시와 그 시에 어울리는 그림과 사진을 오려 각 장을 장식한다. 어떤 어르신은 가위 대신 손으로 자연스럽게 찢어 붙이기도 한다. 완성된 작품(?)을 둘러보니 어르신들의 솜씨가 장난이 아니다. 군더더기 없이 간결해 내용이 한 눈에 쏙쏙 들어올 정도로 세련된 모양새다.
책자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치매노인이나 어린 아이들에게 동화나 시를 읽어줄 어르신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강남시니어플라자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으로 2014년 신규노인자원봉사활동인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을 운영하고 있다. 평소 책에 관심이 많았던 은퇴자 혹은 예비 은퇴자로 구성된 이 봉사단은 지역사회 소외아동과 장애인, 요양센터 등을 방문해 책을 읽어줌으로써 독서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올해 처음 시행된 이 사업은 접수와 심층면접을 거쳐 25명이 선정되었으며, 지난 5월부터 7월까지 총 12회의 기본교육을 마친 상태이다. 이후?지역아동센터와 요양센터, 장애인 생활시설 등을 방문해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역사회 문화소외계층에게 다가가다
김지혜 사회복지사는 "봉사활동 중에도 추가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해 부정기적으로 보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오늘 수업도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송은 강사는 "단순히 책을 읽어준다는 것 외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의미와 정보를 알려주고, 독서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개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동화 구연 30년 경력에 문학박사이기도 한 그녀는 "어르신들과 함께 일한 지는 12년쯤 되었는데 하다 보니 그분들의 삶에 녹아있는 지혜나 연륜을 배우는 등 오히려 힐링의 시간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10년 전부터 책과 관련된 봉사를 해오고 있다는 박순하(68세) 어르신은 "처음 시작할 당시엔 거의 매일 봉사를 다녔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가고 있다"면서 책을 멀리하던 아이들과 치매노인들이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지고 조금씩이나마 반응을 나타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에 책을 통해 문화소외계층과의 공감을 끌어내고 아울러 책의 소중함까지 일깨워주는 ''책 읽어주는 문화봉사단''의 활기찬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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