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고등학교 3학년이던 성안고등학교 학생들이 담임선생님의 제안으로 타임캡슐을 묻었다. 학생들은 10년 후 29살이 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편지를 적어 작은 유리병에 꼬깃꼬깃 담았다. 유리병에 담긴 고등학생의 꿈은 10년 후 만나서 꺼내기로 약속했다.
“타임캡슐을 여는 날 나는 아이스크림을 사서 기다릴 테니 너희들은 꿈을 이뤄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박군웅 선생님. 성안고 4회 5회 졸업생들의 타임캡슐을 열기로 한 날 아이스크림 가방을 멘 선생님이 설레는 마음으로 교정에서 제자들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아이스크림 사서 기다길 게’
10년이 흐른 후 드디어 타임캡슐을 개방하기로 한 8월 15일. 수줍어하던 여고생들은 아이엄마가 되어서 나타났고 철없어 보이던 남학생들도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되어 모교를 찾았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교정에서 마주한 교사와 제자는 단번에 서로를 알아봤다. 박군웅 교사는 “1년간 담임 맡았던 아이들은 얼굴 만 딱 봐도 이름이 떠오른다. 3학년 이과반 담임을 맡았는데 꿈 많던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지 궁금하다”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선생님이 기다리는 교실은 하나 둘 도착한 졸업생들의 수다로 채워졌다. 제약회사 연구원부터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는 제자, 결혼해서 둘째를 임신한 제자도 10년 전 자신이 쓴 편지가 궁금해 학교를 찾았다. 성안고 4회 졸업생 최은희씨는 “내가 어떤 내용으로 적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나요. 그 때 기대했던 10년 후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얼마나 닮아있을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된다”고 말한다.
이뤄진 꿈 아직 못 이룬 꿈 모두 소중
드디어 타임캡슐을 개봉하는 시간. 교정 나무아래 묻힌 타임캡슐을 조심스레 꺼냈다. 까만 비닐 봉지안에 쌓인 유리병이 10년 전 모습 그대로 나타났다.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내 10년전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편지를 읽는 학생들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5회 졸업생 권순재씨는 “10년 후 내 모습을 상상하던 것과 지금 내 모습이 조금은 비슷하다. 그런데 그 때도 책을 많이 안 읽어서 책 읽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혀있는데 10년동안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앞으로는 19살 나의 충고대로 책을 많이 읽어야 겠다”고 말했다. 4회 졸업생 김아진 씨는 “10년 후 연구원이 되어 있을 거라는 내용, 결혼을 준비할 거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와 많이 비슷하다. 흐뭇하고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과거의 나’가 보낸 편지를 읽은 졸업생들. 어떤 이는 10년 전 내가 꿈꾸던 연구원이 되었고, 결혼을 했다며 즐거워하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샀을 것이라는 바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기도 했다.
허창회 씨는 “타임캡슐을 적을 당시에는 10년이라는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졌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10년은 참 짧은 시간인 것 같이 느껴진다. 앞으로 10년은 좀 더 알차게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오랜만에 제자들을 만난 박군웅 교사에게도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박 교사는 “10년 전 한명이라도 이날을 기억하고 찾아준다면 선생님은 학교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약속처럼 오늘 학교에 와 준 너희들의 숫자가 중요하진 않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 학생들은 10년 후의 자신의 모습을 기대하며 또 다른 타임캡슐을 묻었다.
하혜경 리포터 ha-nul21@hanma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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