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태훈의 아빠심리학 31

아빠심리학

지역내일 2014-08-18
아빠의 퇴근 시간이다. 엄마는 말없이 학원을 빠진 아들을 혼내고 있다. 중1까지는 아무 말 없이 잘 생활하던 아이가 중2가 되면서 갑자기 학원을 한두 번 빠지기 시작했고, 방학이 되니까 아예 가야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엄마가 아무리 뭐라 말을 해봐야 아이는 듣지 않는다. 지친 엄마는 아빠에게 아이 좀 어떻게 해보라고 떠밀며 SOS를 쳐보지만, 아빠는 바로 안방으로 직행해서 침대에 누워 TV를 켜고는 뉴스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뚫어져라 앞에만 쳐다보고 있다. 아빠에게 무시당한 엄마를 보며 아이는 쾌재를 부른다. ‘이제 엄마가 나보다는 아빠를 괴롭히겠구나’ 라고 하면서.
아빠는 왜 이렇게 자식 일에 관심이 없을까?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마누라가 부탁을 하는데 어떻게 들은 척도 안하고 TV만 보고 있을까? 엄마는 너무너무 답답하다. 알고보니 아빠는 사실 자타공인 ‘착한’ 아들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덕분에 홀어머니는 새벽부터 식당에 나가 일을 하셨고, 그런 어머니를 보면서 ‘나를 위해 이렇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평생 모시고 살겠다’, ‘돈을 많이 벌어서 어머니를 빨리 고생에서 벗어나게 해야겠다’ 등의 다짐을 해왔다. 공부를 썩 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일을 했고 직업도 안정적이다. 어렸을 때 고생해서 살았던 만큼 이제는 좀 편안하게 살만도 한데 아빠는 여전히 바쁘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지 못하는 죄책감에 언제나 어머니의 부름에 응할 준비를 하며 대기하고 있다. 매일 아침 전화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은 기본이고, 주말마다 찾아뵙고 마주 앉아 식사를 같이 하고, 용돈도 부족하지 않게 드린다. 회사 회식이 있어도 어머니가 전화를 하면 다 취소할 수 있고, 어머니가 시키는 일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최우선으로 처리한다.
그러나 같은 시간에 아빠가 할머니에게 가있다면, 엄마와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없는 것이고, 이런 시간이 많아지게 되면 아빠는 사실 ‘아이들의 아빠’, ‘엄마의 아내’ 가 아니라, ‘할머니의 아들’인 것이다. 예로 든 것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지나치게 몰입해있는 아빠일 뿐, 여기서 ‘불쌍한 어머니’를 명예나 돈 같이 다른 대상으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명예롭게 보이기 위해서, 또는 돈을 벌기 위해서 가족문제를 뒤로 하고 덤벼든다면, 이 경우도 아빠라기보다는 ‘명예로운 사람’이나, ‘돈을 잘 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특정 가치에 개인적으로 너무 빠져있는 아빠는 정작 가족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항상 고갈된 채로 집에 들어온다. 아빠는 자신이 특정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빠 자신보다는 가족 전체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말 ‘아빠’가 되고 싶다면, 아이들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한다. 

지우심리상담소 성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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