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회 전국동계체전 금메달리스트 정재민 군
12살 소년, 피겨종목 최초 강원도에 금메달 안겨
고비용에 지원 부족 열악한 환경 ··· 훈련 지속 어려움
아산실내빙상장에서 열린 동계체전 경기 모습
피겨꿈나무 정재민 군(서원주초 6학년)은 지난해 피겨 역사상 첫 금메달을 강원 선수단에 안겼다. 경쟁자들을 2점 차 이상으로 여유 있게 따돌리고 전국동계체전에서 얻은 귀한 메달이다. 13살의 작은 소년이 강원도가 종합 3위를 하는데 한몫 단단히 한 셈이다. 정식 훈련을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이뤄낸 성과여서 주위 사람들은 물론 가족도 놀랐다.
그러나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열매를 맺기 시작한 꿈나무가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오르지 못한 채 헤매고 있다.
● 빙상장 없어 서울 오가며 연습
정재민 군은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피겨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다. 발레를 하고 싶었던 재민 군과 활동적인 스포츠를 원했던 부모님이 서로 의견을 절충해 선택한 취미였다. 즐기는 자를 이길 방법은 없다고 했던가. 빙상장도 제대로 없는 원주에서 어렵게 피겨를 시작했지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재민 군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물 만난 고기처럼 스케이트 타는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배우기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플립, 러츠 등 더블점프 5종을 모두 완벽하게 구사할 만큼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안무도 쉽게 소화했다. 재민 군은 3학년이 되어 출전한 종별 선수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외부에 두각을 나타냈지만, 이때까지는 정식 선수 활동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2~3회씩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레슨과 훈련을 받는 일이 힘에 부쳐 스케이트화를 벗고 말았다.
이제 피겨꿈나무로 발돋움 할 때라며 재민 군의 재능을 안타까워 한 주위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구애로 다시 스케이트화를 신은 것이 지난해 3월이다. 재민군의 어머니 손은영 씨는 “그동안 재민이와 서울을 오가는 일도 힘든 데다 살인적인 고비용 때문에 다시 훈련을 시작할 용기를 내는 것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 상상 초월 고비용, 피겨스케이트
강원도는 빙상장이 춘천과 강릉에 각각 두 곳이 있다. 원주는 빙상장이 없는 열악한 환경이어서 재민 군은 다른 지역으로 나가서 훈련을 받아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다.
한국 최초 올림픽 피겨 메달리스트인 김연아 선수 덕분에 피겨스케이팅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종목이다. 포스트김연아를 꿈꾸는 피겨꿈나무 선수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국내 종합선수권 참가자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레슨비도 두 배 가까이 올랐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실력도 그만큼 향상돼 어지간한 점프로는 주목받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의 기량을 시니어 무대까지 이어가지 못한다. 전용 빙상장이 없는 열악한 환경 탓도 있지만, 고가의 훈련 비용이 중도 포기를 부추기는 큰 원인이다. 빙상장을 빌리는 대관료와 레슨비, 스케이트비, 의상비, 해외 전지훈련비 등을 합하면 피겨스케이트는 빙상종목 중에서도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이다. 선수의 보호자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비용은 물론 본인의 시간까지도 모조리 쏟아 부어야 하는 실정이다.
● 빙판 못 가고 체조실에서
기초체력을 다지는 데 주력하는 외국에 비해 기술을 먼저 가르치는 한국의 분위기도 중도 포기에 한몫하고 있다. 기술을 제대로 시작할 무렵에는 몸이 망가지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우수한 성과를 올리고 꿈나무 훈련을 한창 받을 때임에도 재민 군은 현재 빙판이 아닌 원주초등학교의 체조실에서 체력을 다지고 있다. 이마저도 원주교육지원청 조영만 장학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서원주초등학교 지종기 교장의 배려도 큰 힘이 되었다. 피겨꿈나무 지원이 있다고 해 대기 중이긴 하지만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머니 손은영 씨는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꿈나무 훈련에 참가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이 감당이 되질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림픽에서 피겨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이 꿈이라는 재민 군은 그동안 수업 참여가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우수한 학업 성적을 자랑한다. 재민군은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외국에 나가 피겨스케이트를 즐겁게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탈 때면 우주의 중심이 된 것 같다”는 인상적인 말을 남긴 재민 군이 피겨스케이트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을 빛낼 수 있는 선수로 성장하길 기대해본다.
임유리 리포터 vivian8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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