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사추기 엄마의 탐나는 가출 ‘고등학교 대신 지구별 여행’은 여행 초짜 사춘기 아들과 사추기 엄마의 163일 동안의 좌충우돌 허당 여행기다. 엄마는 때로는 버스회사 직원과 드잡이를 하고, 산속 한가운데서 야생샤워도 하고, 영어 못해 서럽고 답답했던 사연 등을 솔직하고 실감나게 전해준다. 의왕에 살고 있는 작가 소율을 만나 생생한 여행 체험기를 들어봤다.
2011년 4월 아프리카로 떠나다
저자 소율은 주부로서는 베테랑, 여행자로서는 왕초짜. 스무 살 이전에는 고향 충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와 본 적 없는 쑥맥이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 엄마, 며느리 역할에 충실하느라 여행기를 탐독하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짧은 가족여행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여행에 대한 갈망의 도화선이 되었다. 마침내 세상을 향한 남다른 시선을 지닌 아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자는 마음이 기폭제가 되어 2011년 4월, 여행을 감행했다.
“아들은 대안학교에 다녔어요. 1학년부터 8학년까지는 담임과정으로 초·중등 시기이고 한 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8학년은 졸업연극과 문화제를 올리고 졸업여행을 합니다. 아이들 모두 각자의 연구주제를 정해 프로젝트 발표회를 해요. 그렇게 졸업식을 하고 나면 다시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상급과정을 보내게 되는데 아들은 9학년으로 올라가는 대신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마흔이 넘은 주부가 실천하기에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책 쓰기와 여행을 꿈꾸었지만 마흔이 넘도록 이루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다 잊은 줄 알았는데 아직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아내와 며느리 자리를 내려놓고 나 자신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여행은 아프리카에서 방콕, 네팔과 미얀마, 그리고 폴란드로 이어졌다. 총 163일간의 여행이다. 아프리카 여행은 이들 모자에게 순탄하지 않았다. 한국인을 모르는 현지인들에게 모자는 중국인으로 인식되었고 그들은 여지없이 적대감을 드러냈다. 평소 생각한 순박하고 가난한 아프리카는 없었다. 터무니없는 바가지 버스요금에 난생 처음 사람들 앞에서 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하고 멈춘 버스 안에서 하염없이 태연하기만 한 현지인들을 보며 당황하기도 했다.
“영어는 잘 못해요. 다섯 단어가 한계죠. 하지만 아들 한새가 통역과 사진을 담당했어요. 엄마는 사람과 대화하는데 두려움이 없으니 쉽게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대화를 이어가는 것은 아들의 몫이었죠.”
그는 아이와 여행을 할 때는 역할 분담을 확실하게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먼저 여행의 목적이 아이의 무엇을 위해서 또는 일방적으로 엄마가 원해서이면 곤란하다는 것. 엄마와 아이 모두 스스로 선택해서 결정해야 하며 각자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칫 영어를 잘 하는 아이가 여행의 주도권을 갖게 되기 쉽지만 결정적인 순간 중요한 판단은 어른의 몫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6개월 간의 여행은 시작에 불과
남편이 흔쾌히 여행을 허락했냐는 질문에 그가 조용히 웃는다. “남편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아내가 아들과 세계여행을 하겠다는데 흔쾌히 허락할 리가 없지요. 그런데 막상 여행을 떠나니까 남편이 뜻밖에 혼자서도 잘 생활하더라고요.” 남편은 평소 하지 않던 빨래며 청소를 말끔히 하고 사진을 찍어 메일로 전송하며 아내와 아들을 감동시켰다.
여행을 마치고 생활인으로 돌아 온 소율. 그는 지난 6개월간의 여행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못다 한 동유럽 여행이 간절하다. 폴란드 크라쿠프부터 체코와 슬로바키아, 비엔나, 헝가리까지. 꼭 동유럽에 다시 갈 계획이다.
“아프리카로 가기 전 현지 언어를 급하게 익혔어요. 근데 막상 그곳에서 더 유용한 것은 영어더라고요. 폴란드고 동유럽이고 어디든 가려면 영어부터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커트를 칠 수 있을 정도의 미용기술도 익힐까 해요. 여행하다가 머리가 길어진 여행자를 만나면 깔끔하게 다듬어 주고 싶어요. 여행하는 내내 아들 한새의 머리를 멋지게 잘라 줬거든요. 그림과 사진도 배울 생각이에요. 언젠가 직접 그린 드로잉과 글로 여행기를 쓰고 싶거든요.”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일들을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그의 눈이 반짝인다. 여행하고 글 쓰는 삶을 시작하면서 그는 스스로에게 ‘소율’이라는 이름을 선물로 주었다. 그는 “‘소율’은 해마다 떠날 것이고 돌아올 것이다. 여행 하나에 책 하나면 충분하다”며 “주부들에게는 누구나 꿈꾸었던 삶이 있다. 어떤 계기로 그 꿈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다시 마음 속 깊이 숨기지 말고 펼쳐 보는 용기를 가져 보라”고 전했다.
백인숙 리포터 bisbis6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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