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를 타고 가는 옆 동네 종점 여행이건, 바다 건너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이건 여행은 언제나 새롭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여행의 추억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여기 조금은 특별한 여행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이들이 있어 소개합니다.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때로는 혼자서 길을 떠나는 이들의 이야기 들어보시죠.
주말마다 여행 떠나는 주엽동 이민숙씨
나의 여행은 나의 삶
이민숙(47)씨에게 여행은 생활 그 자체다. 배우자도 여행길에서 만났을 정도다. 20대 후반, 매번 친구들과 다니다 딱 한 번 혼자 떠난 여행길에서 남편 서광제(49)씨를 만났다. 3년 연애 끝에 결혼했고 그 후에도 여행은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지냈다.
큰 딸이 네 살 되던 무렵부터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둘째 딸이 태어나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공부를 겸한 여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고궁 공원 박물관 농촌체험마을 같은 가까운 곳으로 주말마다 떠났다. 도심 근처의 공공시설도 자주 이용했다. 월드컵공원이나 길동생태공원 등 프로그램이 알찬 공원도 자주 다녔고 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등 학습프로그램이 잘 갖추어진 곳도 좋았다. 조금 더 자라서는 작가의 생가나 역사 인물 유적지 등 주제를 잡아 코스를 짰다.
주말마다 여행을 간다니 무척 바쁠 것 같지만 이민숙씨 가족에게 여행은 그리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준비 과정이 너무 힘들면 못 다니게 된다는 게 이민숙씨의 지론이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무작정 떠난다. 숙소도 대부분 예약 없이 가서 즉흥적으로 구한다. 짐은 딱 세 가지 세면도구, 잠옷, 여벌옷이 전부다.
수없이 다닌 여행에서 가장 기억나는 곳은 어디일까. 이민숙씨 가족은 주저 없이 ‘순천만’을 꼽았다.
“5년 전에 갔을 때 애들이 너무 좋아해서 올해 다시 다녀왔어요. 전망대에 서서 둥글게 군락을 이룬 갈대를 보면서 가족이 모두 다 반했어요.”
떠나오길 정말 잘했어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부산에서 열린 캠프가 끝나고 그냥 돌아오기 아까워 두 아이 이민숙씨는 함께 경치 좋다고 소문난 해안길을 걸었다. 태풍은 몰아치고 인적은 없고 쓰레기만 나뒹구는 바닷가에 아빠도 없이 여자 셋이 길을 걸으려니 공포가 몰려왔다. 그 뒤로 아이들은 부산을 무서워한다고.
그래도 이민숙씨 가족에게 여행은 언제나 기다려지는 이벤트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좋다는 느낌을 동시에 받아요. 멋있고 싫고 다 떠나서 아 여기 오길 잘했어 라는 느낌을 같이 받는다고 할까요. 그런 게 좋아요.”
아이들이 어릴 때는 기록하지 못했던 여행 이야기를 요즘은 블로그 ‘두공주와 더불어 행복해지는 공간(http://blog.naver.com/dayee0)’ 에 적어가고 있다. 올 겨울이면 멀리 유럽으로 발길을 돌릴 계획이란다. 누가 말 했던가 삶은 여행이라고. 익숙한 듯 낯선 곳으로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민숙씨에게 여행은 곧 삶이다.
모자여행의 추억 만들고 온 운정 윤기자씨
엄마와 아이, 제주도 한달살이
중학교 교사로 일하는 윤기자(38)씨는 지난해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휴직 중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무얼까 생각하니 아이랑 하루 종일 같이 놀아주는 거였다.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어린이집을 다녀야했던 아이에게 오롯이 엄마를 내어주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정작 갈 곳이 없었다. 호수공원이나 키즈카페 놀이방이 전부였다.
“매일 매일이 무료하고 동네에는 친구가 없고. 그러던 참에 누가 문득 제주도 가서 한 달 살아보니 좋더라고 하는 거예요. 저도 제주도에 대한 로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게 됐죠.”
10월 중순, 더울 때를 피해 꿈꾸던 제주도 한달살이를 하러 떠났다. 하지만 첫 날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예약했던 숙소에 유일한 이웃 투숙객은 공사장 인부들이었던 것. 게다가 밤이 되면 주인 할아버지 내외는 다른 곳에 있는 집으로 가서 잠을 잔다고 했다. 남자들만 있는 펜션에 제주도 밤바람은 무섭게 몰아치는데 아이와 단 둘이 있자니 겁이 났다. 짐을 풀자마자 사정사정해서 부분 환불을 받고 한밤중에 다시 짐을 꾸렸다.
“아이와 엄마 여행객만 받는 펜션에 마침 일주일짜리 빈 방이 있었어요. 남제주에서 북제주로 차로 한 시간을 달려갔어요.”
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여행
숙소를 옮긴 건 신의 한수였다. 고만고만한 여섯 집 아이들이 다 같이 밥을 먹고 함께 놀았다. 제주도는 아이랑 엄마가 놀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북제주에서 출발해 일주일씩 숙소를 옮겨 다니면서 지냈는데 게스트하우스를 보면서 고르는 것조차 재밌었다.
날마다 코스를 다르게 할 정도로 끊임없이 갈 데가 생겼다. 바닷가는 물론이고 오름도 하루에 한 곳씩 꼭 올랐다. 오름은 큰 힘 들이지 않고 정상에 올라갈 수 있고 경치도 좋아, 누군가 제주도에 가면 오름에 꼭 가보라고 권한다. 다섯 살배기 아들과 왕복 4시간 코스로 한라산 중턱에도 다녀왔다.
날이 춥거나 비가 오면 박물관 같은 실내로 다녔다. 바다 산 맛집만 다녀와도 하루가 꽉 차는 나날이었다. 아이는 저녁이면 지쳐 곯아 떨어졌다.
큰돈이 들지는 않았다. 아침저녁은 해먹고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나갔다. 숙박비에 사먹는 비용 말고는 큰 지출이 없었다.
“지금도 아이가 가끔 얘기해요. 엄마랑 나랑 제주도에서 뭐 뭐 했었지 하면서요. 아이한테 좋은 추억을 남겨준 것 같아요. 저한테도 많은 힐링이 됐고요. 지금도 시간만 나면 제주도에 가고 싶다 생각하는데 시간이 허락지 않네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면 자동차를 빌려 유럽 오토캠핑을 떠나고 싶다는 윤기자씨. 그의 여행 목록에는 스페인 산티아고도 들어 있다. 놀고 쉬고 걸었던 제주도 한달살이가 그에게 다시 멀리 떠날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 같았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갈라파고스의 기록여행’ 블로거 행신동 신경자씨
“여행은 자신을 위한 힐링 타임입니다”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엔 어디로 갈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는 신경자(46)씨. 그가 매주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을 다니게 된 건 2년 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부터다. 8남매 중 막내며 미혼이었던 그는 십년간 아픈 어머니를 돌보느라 삶의 여유를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음의 상처가 컸다. 모든 시름을 떨치기 위해 떠났던 몽골여행은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계기가 됐다. 여러 지역에서 모인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도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사진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여행 후 서로 사진을 교환해 보며 행복하고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의 매력이었다. 지난해 가을, 사진동호회와 함께 출사를 갔던 고창 선운사 꽃무릇 축제의 풍광은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면이 됐다. 밤 12시에 출발해 새벽 5시경 선운사 근처에 도착,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잡고 일출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빨간 상사화는 서리가 살짝 끼여 있어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해가 뜨면서 상사화 위로 햇빛이 비치는 순간, 작은 물방울에 빛이 반사되면서 온갖 보석을 뿌려놓은 듯 황홀한 장면이 연출됐다.
여행에서 발견한 세상의 아름다움
‘세상은 이렇게 아름답구나! 이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나타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 그 후로 더욱 열심히 사진여행을 다니게 됐다.
“사진에 몰입하다보면 마음의 상처를 잊게 되고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며 그 순간을 되새겨 볼 수 있어 좋아요.”
대학생 때부터 갈라파고스 여행을 꿈꿔 왔던 그는 ‘갈라파고스의 기록여행’이라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여행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시간이며 사진여행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어 행복해요. 또 여행을 다닐 수 있는 현재에 감사하며 여건이 되는 한 열심히 사진을 찍으러 다니고 싶어요. 언젠가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 12장의 아름다운 풍경사진들로 달력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싶네요.”
박은전 리포터 jeonii@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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