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고향 마을에 서당이 있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이전의 기억이다. "하늘천 따지…" 서당에서는 늘 글 읽는 소리가 들렸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은 형들은 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서당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시대는 바뀌어 서당에서 글을 읽던 아이들 하나둘 주변 도시의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서당은 서서히 주눅이 들었고 마을의 정신적 지주였던 훈장어른의 권위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그때쯤 동네사람들은 ‘훈장어른’을 ‘한문선생’으로 바꾸어 불렀다. 어느 순간 발음 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하문선생’이 됐다.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하문선생으로 통했다.
훈장 어른이 ‘하문(下文)선생’이 되면서 글 값으로 받던 식량도 떨어졌다. 시골서 할 일이라고는 농사처럼 몸 쓰는 일 밖에 없는데 책만 읽었으니 그런 일에는 젬병이었다. 마을 사람들 중 의식있는 몇 분은 일부러 글 쓸 일을 만들거나, 지관이 필요할 때, 심지어 약을 처방할 때도 하문선생을 불렀다. 그리고 그 값으로 식량을 대주었다. 그런 걸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으니 생활도 ‘하문선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녀들은 자연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일자리를 얻어 도시 공장으로 떠났다. 작은 딸은 술집에 나간다는 소문도 돌았다. 부인은 동네의 이집 저집을 돌며 날품을 팔았다. 아들 중에는 내 또래도 있었는데 초등학교를 다니다 말다 하다 그만두고 공장으로 갔고, 그 후 명절 때 몇 번 고향서 본 것이 전부다.
그럴 때도 하문선생은 흰 두루마기를 입고 학처럼 앉아 헛기침 섞어가며 책장을 넘겼다. 마을 사람들은 "만고에 쓸데없는 책이나 읽는다"며 쑥덕거렸지만 그 분은 돌아가실 때까지 ‘만고에 쓰잘데기 없는 책’만 읽었다. 가족들의 끼니건사를 못한 것에 대한 지탄과 가난과 무시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행복한 노후와 아름답고 품격있게 늙는 것을 고민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문득문득 하문선생과 흰 두루마기, 책 읽던 모습이 떠오른다. 단정한 걸음걸이와 조곤조곤하던 말, 앙상한 손가락에 끼어 피던 담배도 기억난다.
노후에는 ‘혼자 있을 때 외롭지 않을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갖추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라 한다. 혼자 놀기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인데, 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 지적탐구고, 그 중 독서가 최고의 품목이다.
시대에 적응 못한 하문선생은 가족도 건사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했다. 그것을 덮어준다면, 한결같은 모습으로 독서를 하며 곱게 늙던 하문선생의 품격이 나이 들며 점점 가치있어 보인다. 적당히 여유를 갖춘다면 그처럼 늙는 것이 썩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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