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나? 경남 통영의 동피랑 벽화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각 자치단체마다 벽화마을 만들기에 전력 질주하던 시절. 안양시에서는 요지부동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신도시가 아닌 구 도심에서 한 번쯤 시도해 봤을법한 벽화사업은 시선을 환기시키기에 더없이 좋은 아이템이었다. 그런데 안양 지역에도 드디어 아름다운 벽화거리가 조성되었다. 바로 안양9동 병목안 벽화마을이다.
어린왕자와 여우의 이야기 속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안양9동 새마을 입구에 차를 세우고 수리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다른 동에 비해 유난히 자연취락지가 많은 이곳에는 능골, 담배촌, 병목안, 새마을, 안골, 율목동, 창박골 등의 다양한 지명을 가진 동네가 있다. 조선시대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가 ‘생전에 내가 죽으면 연을 띄워 떨어지는 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하며 연을 띄웠는데 그곳이 바로 안양9동 능골이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 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정착했던 담배촌. 그리고 밤나무가 많았던 율목동까지 슬픈 역사와 아름다운 이야기까지 간직한 안양9동은 한마디로 이야기천국이었다. 그래서인지 벽화의 테마가 병목안 이야기길로 그려져 있었고, 아담한 한옥 담장에는 꽃이 피고, 동화 속 아름다운 주인공이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참 신기해요. 예전에는 이 길이 평범하다고 느껴졌었는데 벽화가 그려지고 나서부터 예쁜 길로 느껴지는 거예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또 자꾸만 걷고 싶고요.”
안양9동 주민 정미례(39·주부)씨는 새마을에 있는 집에서 출발해 병목안시민공원까지 가는 길이 벽화로 인해 아름답게 조성된 것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눌러댔다.
수리산 입구 버스정류장 앞 삼거리슈퍼로 올라가는 길, 공사로 인해 폐 자재며 텅 빈 공터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곳에도 어김없이 벽화가 그려져 친근하게 느껴진다. 낮은 한옥집 담장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여우와 어린왕자가 끊임없이 속삭이는 이야기.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만든다는 뜻이야.”
수리산에 펼쳐진 민속놀이의 세계
눈발이 거세지고 있었다. 뽀송뽀송한 눈송이가 아니라 물기 잔뜩 머금은 습설이 무서운 기세로 흩날리고 있었다. 우산을 썼는데도 바람에 흩날린 눈발이 얼굴과 목덜미 속으로 자꾸만 파고 들었다. 병목안시민공원을 지나 수리산한증막을 막 지나쳤을 무렵 시선을 사로잡는 벽화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상투 쓴 농부가 있고, 그 옆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마님이 눈을 지긋이 감고 있다. 떡 함지를 머리에 이고 가는 아낙네도 보이고 누렁이도 함께 길을 나선다. 또 어떤 집 담벼락에는 누런 호박과 새파란 수세미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폭설이 내리는 이 겨울에 초록색 잎사귀를 보는 즐거움이야말로 벽화가 아니라면 가능하겠는가?
“등산할 때마다 이 길을 늘 지나다니곤 했어요. 예전에는 한 마디로 볼 것이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오르내릴 때마다 볼 것이 많아요. 우리 전통의 민화같은 풍경은 정겹기도 하고요 옛날 이야기 속 주인공들도 참 예쁘게 그려졌어요.”
산을 오르던 등산객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건넨다. 밋밋하던 담벼락 공간에 아름다운 그림으로 벽화가 그려지니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느냐 는 이야기부터 동피랑 벽화보다 더 보기 좋다는 사람까지.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누구나 똑같은 마음인가보다.
병목안 캠핑장은 힐링 명소
산을 내려오는 길, 병목안 캠핑장이 눈에 띈다. 작년 여름에 조성해 안양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캠핑장이 겨울동안 잠시 휴장했다가 다시 이용자들의 신청을 받는다. 3월1일부터 11월 30일까지 9개월 간 운영되는 캠핑장은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면 된다. 인터넷 예약 방법은 매월 5일 오전10시부터 다음달 1일∼10일까지 예약접수를 받고, 매월 6일은 다음달 11일∼20일까지, 7일은 다음달 21일∼말일까지 접수를 받는다. 캠핑장은 데크 1개소 기준으로 1만원이며 전기사용료 3000원, 샤워장 1000원, 주차요금 1대당 5000원을 부담하면 된다. (문의 시설관리공단 031-389-5287)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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