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시장가는 날

아기자기 정겨운 굴다리시장

연초록빛 나무 아래 한 줄로 나란히 나란히 이어진 장터

지역내일 2014-05-07

햇빛이 찬란해서 더 마음아픈 계절이다. 모든 것이 다 부질없다 느껴질 때 시장을 찾았다. 직접 수확한 오이 소쿠리 하나 펼쳐놓고 온종일 좌판 앞을 떠나지 못하는 노점상의 모습에서 그래도 인생은 살 만하다는 진한 생명력을 느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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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공원 초입의 굴다리 시장, 그림 같은 재래 장터
과천 굴다리 시장은 과천 주공 5단지와 4단지 사이부터 굴다리 너머까지 약 250m 남짓한 거리의 작은 재래시장이다. 중앙공원 쪽부터 굴다리까지 약 40여 개의 가게가 사이좋게 정겹다. 굴다리 너머에도 당일 아침에 막 뜯어나온 싱싱한 채소를 옹기종기 모여 앉아 파는 채소상이 어림잡아 20여 집이 넘는다. 사실 굴다리 시장을 처음 알려준 사람은 과천 토박이 지인이다. 굴다리 시장은 “기계적인 대형마트도 불편하지만, 너무 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는 대형 시장도 낯설다”는 지인이 자주 가는 장터이다.
시장이 시작되는 첫 가게부터 약속한듯 한 줄로 나란히 늘어선 가게를 보니 시골 출신 지인이 굳이 굴다리 시장을 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1호점부터 시작해서 46호점까지 일렬로 늘어선 가게, 십 여분이면 한 바퀴 돌아볼 거리이다. 하지만 채소가게부터 과일 가게와 생선가게, 곡식집, 잡화점과 화분집과 분식점까지 없는 게 없다. 한눈에 들어오는 가게들, 베테랑 주부라면 어느 집 과일이 맛있고 어느 집 채소가 싼지 단박에 알 수 있겠다.
편안한 길 위, 늘어선 나무를 따라 시장 구경을 하는 재미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연초록빛 진한 나무 아래 그림 같이 손님을 맞이하는 상가 어르신들의 모습이 더없이 따뜻하다. 그래서일까? 그 흔한 호객행위 하나 없어 ‘살까 말까?’ 고민하는 초보 주부도 자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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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넘게 한 곳에서 장사, 가족 같은 따스함이 넘치는 곳
초행길이라 ‘어느 집 물건부터 살펴볼까’ 고민하던 차 바로 눈앞에서 좋은 동행을 만났다. 다름 아닌 몸이 안 좋아 오늘만 학교에 가지 못했다는 8살짜리 아이이다. 엄마와 함께 시장을 보는 중이지만 엄마는 가게 주인들과 담소 중이고 “왜 학교에 안 갔느냐?”는 단골 가게 주인의 질문에 “감기 걸렸잖아요”씩씩하게 대답하는 병명이 의심스러운 아이이다. 엄마가 산 오이 한 묶음을 졸라서 들고 가면서도 “우리 얘기 무겁다”는 어르신들의 말에 “하나도 안 무거워요”라고 대답도 잘한다. 한 손에 오이를 질질 끌면서도 다른 한 손으로는 사과도 한 번 찔러보고 쭈꾸미 한 코도 냉큼 들어보는 아이, 장사에는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아이라 성가실 만도 한데, 일일히“어디 가느냐? ”,“왜 학교 안 갔느냐?” 물어보는 가게 어르신들이나 하나도 안 아픈 얼굴로 “아파서 안 갔다”,“오이지 담근대요” 라고 빠짐없이 답변하는 아이나 가족 같은 분위기이다.
급기야 아이는 굴다리 시장 중앙에 위치한 떡볶이집 앞에서 말끔한 얼굴로 외친다. “엄마 떡볶이 먹고 가요!” 여전히 이야기 중인 엄마를 찾으러 가는 아이를 뒤로하고 냉큼 먼저 떡볶이집에 자리를 잡았다. 과천의 30, 40대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굴다리 시장 명소 ‘형태네 집’이다. 굴다리 시장에서만도 25년이 넘은 명소이다. 허름한 외관이지만 맛있는 떡볶이를 아직도 단돈 1000원에 먹을 수 있어 인기 만점이다. 형태네 집 주인장은 “과천에 노점을 없애면서 약 25년 전에 만든 곳이 바로 굴다리 시장”이라며 “학생 때부터 들리던 아이가 어느덧 결혼해서 입덧한다고 멀리서부터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할 정도로 오래된 단골이 많다. 굴다리 시장은 약 이십여 년 전부터 함께 장사해온 곳이라 가게 주인들끼리도 돈독하다. 37호 수산물 가게 주인장도 “잠만 따로 잘 뿐이지 한 집 식구들 마냥 서로 잘 안다”고 말했다. 편안했던 굴다리 첫인상에 대한 작은 의아심마저 단번에 해결된다.
굴다리 시장 9호 과일 전문 주인장 김영자 씨도 “시장에 나오면 힘이 난다”며 “열심히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기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재래시장은 전자저울로 야박하게 달아서 파는 곳이 아니다”며 지나가는 단골에게 향긋한 천혜향 한 개를 던져준다.
굴다리 너머는 갈현동과 문원동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직접 수확한 채소를 파는 곳이다. 할머님들이 채소 가지고 나오시면 물어보지도 않고 덥석 산다는 지인의 말이 기억나 야채상 앞에 섰다. 호박 한 개에 1300원, 오이 8개에 2000원, 호박과 오이뿐이 사지 않았는데도 자진해서 300원을 깎아주며 덤이라고 오이도 한 개 더 넣어준다. 굴다리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정이다. 과천 굴다리 시장, 왠지 단골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주윤미 리포터 sinn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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