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떠난 정선

12년 지기 가족 같은 친구들의 정선 힐링 캠프

지역내일 2014-04-28

가끔은 운전이 귀찮고 자동차가 짐스러울 때가 있다. 그래도 대중교통이 별로 없는 벽지에서는 멀지 않은 거리를 움직일 때도 꼭 필요한 것이 자동차라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곤 한다. 이봄에 이웃사촌으로 시작된 12년 지기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정선으로 향했다. 자동차를 버리고 가끔 정선행 기차를 탈 수 있는 건 멤버 중 귀농을 준비하며 1년 전 정선에 아지트를 마련한 친구 덕분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농촌의 정서를 잘 모르는 리포터로서는 힐링 캠프가 따로 없다.
이선이 리포터 2hyeono@naver.com


정선

두 시간 반 남짓 태백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한일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분위기로 들썩였던 2002년, 우리는 하나의 잊지 못할 인연을 맺었다. 그 이전부터 동기동창, 학교 선후배, 아파트 이웃, 같은 반 학부모 등으로 서로 얽히고설킨 다섯 가족 열 명이 공교롭게도 종교까지 같았다. 아이들까지 합세해 성당 앞마당에 모여 함께 응원하며 축제를 즐기면서 더욱 친해졌다. 누구 하나 모난 사람 없고 이후로도 지속적인 모임으로 어울리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여행도 했지만, 이제 모임의 아이들도 제법 커서 아홉 명 중 여섯 명이 어느새 대학생이다. 부모의 세심한 손길에서도 벗어났고 어느덧 부모보다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가 된 것이다. ‘어른은 어른끼리 즐기자’ 해서 4월 중순 봄꽃이 한창일 때 우리는 청량리발 정선행(예미) 무궁화호 열차에 몸을 실었다.
예전 같으면 삼삼오오 마주보고 앉아 수다를 떨며 도착지까지 향했지만 이번에는 따로따로 앉아 고독을 즐겨보기로 했다. 서울에서 점점 벗어날수록 차창 밖은 하얀 벚꽃, 붉은 진달래, 노란 개나리 등으로 물들어 있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산의 봄 풍경을 바라보며 두 시간 반 남짓 달렸을까. 이름도 예쁜 목적지 예미역에는 아직까지는 농부수업 중인 우리 모임의 큰 형님이 차를 끌고나와 환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예미
웃다가 울다가 밤새우며 이야기꽃 피운 아지트

예미역에서 차로 10분 정도 지나 도착한 정선 신동읍에 있는 친구의 제2주택이자 우리의 아지트는 지난겨울의 다소 쓸쓸했던 모습과는 달리 화사했다. 집을 지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아기자기하고 아늑한 느낌은 아직 덜했지만 앞뜰에는 매화꽃이 활짝 웃으며 늦게 시작된 산골의 봄소식을 전했다.
마당 바위틈에 돋은 돌나물을 뜯어 무치고 숯불바비큐도 피워 저녁을 준비하며 떠는 수다는 우리를 동심으로 이끈다. 야외에 차린 저녁상에서 이른 저녁부터 밤까지 웃고 울고 떠드는 동안 하늘의 달과 별도 함께 웃어주었다. 밤의 쌀쌀한 기운을 피해 집 옆에 꾸며놓은 화실로 자리를 옮겨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다섯 가족이 함께한 12년 세월에 묻어나는 공감대와 우정의 깊이는 서로에게 든든한 위로가 되고 각자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생겨난 상처를 보듬어주었다. 크게 틀어놓은 음악을 저 멀리 있는 이웃 농가는 아는지 모르는지 깊게 잠들어 있다. 도시에서는 감히 해볼 수 없는 유쾌한 일탈이다. 


정선2
동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오토캠핑장 전망대

다음날 아침 따뜻한 봄 햇살 때문인지 우리는 생각보다 일찍 잠에서 깼다. 산골의 봄날 아침은 신선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고 여기저기서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계속 사는 것이야 어쩐지 겁나는 일이지만 우리 모두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갈 몸인데 미리 친숙해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우리가 향한 곳은 동강전망자연휴양림 오토캠핑장. 캠핑장이라고 해서 산 초입에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파르고 굴곡진 길을 제법 거슬러 올라 해발 800m 정상에 널찍한 캠핑장이 펼쳐졌다. 굳이 그리 높은 곳까지 길을 내 캠핑장을 만든 것이 어쩐지 좀 씁쓸했지만 정면에는 백운산, 아래로는 동강이 만들어낸 사행천(蛇行川)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안개가 끼어 시원한 시야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의 풍광은 볼만했다. 녹음이 우거지면 장관을 이룰 것이어서 여름에 다시 한 번 꼭 들러 하늘과 맞닿은 캠핑을 경험하고 싶어졌다.


가수리
동강의 시작,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리’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물이 아름다운 마을 ‘가수리’. 이곳까지 동강을 따라 낮게 이어진 편도 1차선 도로는 바위가 띄엄띄엄 튀어나온 절벽에 가까운 산과 인접해 있어 아슬아슬 했다. 도로에는 지난해 물에 잠겼던 흔적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오대산에서 발원하는 오대천과 정선군 북부를 흐르는 조양강이 합류해 흐르는 동강의 시작이 바로 이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초입 아담한 초등학교 옆에 웅장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가 멀리서도 눈에 띈다. 마을의 수호목이란다. 물살이 거셀 때나 잔잔할 때나 수백 년간 한 자리에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며 마을을 지켰을 느티나무가 왠지 든든해보였다. 우리는 그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잠시 쉬면서 나무의 정기를 온몸으로 느껴봤다.


제장
석회암 절벽, 강물, 백사장이 어우러진 ‘제장마을’

한없이 쉬고 싶었던 가수리를 나와 ‘제장마을’로 향했다. 온난화로 인한 기온상승으로 사과 농사가 정선까지 올라왔는지 제장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은 여기저기 하얀 사과 꽃을 피운 사과밭이 눈에 띄었다. 제장마을은 동강의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한때 개발 탓에 수몰 위기에 놓였다가 다행히 그대로 보존되고 있으니 이곳 주민들의 속사정이야 엇갈릴지 몰라도 가끔 들르는 여행객 입장에서는 얼마나 다행인가.
인류가 이 땅에 발을 내딛기 오래전부터 융기되어 형성된 석회암 절벽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그 아래 강물은 유유히 흘러 세월의 깊이를 더했다. 한적하고 고요한 백사장에는 주말인데도 인적이 거의 없었다. 상쾌한 바람이 부는 백사장에 앉아 긴 시간 속 한 점의 발자취를 남기며 우리의 추억과 우정도 깊어만 갔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제보

닫기
(주)내일엘엠씨(이하 '회사'라 함)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지역내일 미디어 사이트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개인정보 수집∙이용(제공)에 대한 귀하의 동의를 받고자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읽으신 후 동의 여부를 결정하여 주십시오. [관련법령 개인정보보호법 제15조, 제17조, 제22조, 제23조, 제24조] 회사는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요시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을 준수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개인정보처리방침을 통하여 회사가 이용자로부터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어떠한 용도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알려드립니다.


1) 수집 방법
지역내일 미디어 기사제보

2) 수집하는 개인정보의 이용 목적
기사 제보 확인 및 운영

3) 수집 항목
필수 : 이름, 이메일 / 제보내용
선택 : 휴대폰
※인터넷 서비스 이용과정에서 아래 개인정보 항목이 자동으로 생성되어 수집될 수 있습니다. (IP 주소, 쿠키, MAC 주소, 서비스 이용 기록, 방문 기록, 불량 이용 기록 등)

4) 보유 및 이용기간
① 회사는 정보주체에게 동의 받은 개인정보 보유기간이 경과하거나 개인정보의 처리 목적이 달성된 경우 지체 없이 개인정보를 복구·재생 할 수 없도록 파기합니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라 개인정보를 보존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 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존합니다.
② 처리목적에 따른 개인정보의 보유기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문의 등록일로부터 3개월

※ 관계 법령
이용자의 인터넷 로그 등 로그 기록 / 이용자의 접속자 추적 자료 : 3개월 (통신비밀보호법)

5) 수집 거부의 권리
귀하는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수집 거부 시 문의하기 기능이 제한됩니다.
이름*
휴대폰
이메일*
제목*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