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함께한 30년 ‘해야플라워아트스쿨‘ 신광철 주선옥씨 부부
“꽃은 물건이 아닌 마음을 주는 선물이에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선물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것, 사진을 찍을 때도 이것만 있으면 인물을 훨씬 돋보여 주는 것, 바로 꽃인데요. 누구나 쉽게 살 수 있는 꽃이지만 어떤 사람의 손길을 거치느냐에 따라 그 모습과 쓰임새가 달라집니다. 꽃과 꽃의 조화, 꽃과 꽃병의 조화 그리고 꽃을 꽂는 사람, 이렇게 삼박자가 어우러져 더욱 빛나는 부부의 꽃들은 일상에 작은 행복을 선사합니다.
유석인 리포터 indy0206@naver.com
보는 것만으로 기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꽃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과 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일산동구 중앙로 사거리. 도시의 번잡함을 지나 바로 옆 건물 6층으로 올라오면 따뜻한 불빛의 ‘해야플라워아트스쿨’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30년이 넘도록 꽃과 함께 한 신광철 주선옥 부부의 삶터이자 제자들을 길러내는 학원이다. 플로리스트 전문학원을 운영하며 꽃꽂이 사범으로 활약하는 부부에게 꽃은 무척이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꽃은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 꽃과 나무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하는 힘이 있는데 그래서 꽃을 받으면 마음이 따뜻해져요.”
처음 학원을 찾는 손님도 꽃을 매만지는 부부의 모습에서 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금세 알아채고 계란 두 판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꽃을 닮아서 그런지 무척 젊어보인다’는 얘기를 곧잘 하곤 한다. 꽃이 좋은 이유? 만일 이렇게 질문한다면 곤혹스럽다. 부부에게 꽃은 그 자체만으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주선옥 원장이 꽃꽂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7년 무렵, 회사를 다니며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은 마음에 꽃꽂이를 배웠다. 처음 취미로 시작한 꽃꽂이는 점차 삶의 일부가 됐고 천성적으로 손재주가 있던 그의 실력은 눈에 띄게 늘어 꽃꽂이를 시작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에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섰다. 대외적인 활동에도 적극적 참여해 각종 대회에서 수상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다.
선과 여백의 미학을 중시하는 동양식 꽃꽂이
남편 신광철 대표는 아내보다 늦게 이 길로 들어섰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화장품 회사에 입사해 10년 넘게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던 재원이었다. 1998년 외환위기를 전후해 아내가 꽃집을 인수하면서 잘나가던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그동안의 점포관리 업무를 살려 아내와 함께 꽃집을 운영하게 됐다.
“전문적인 플로리스트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손님들에게 인기가 좋았습니다. 꽃 한 송이를 포장하더라도 받을 사람의 나이나 성별, 취향을 물어요. 그에 맞게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포장해주면 손님이 다시 찾아와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죠. 받는 사람이 무척 좋아했다면서 꼭 다시 재방문을 합니다.”
주 원장은 선과 여백의 미학을 중요시 하는 동양의 꽃꽂이, 특히 한국적인 꽃꽂이는 이론이나 기교보다 중요한 게 있다고 말한다. 단순히 꽃만 꽂는 것이 아니라 예술 전반을 아울러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꽃과 가지가 이루는 선의 미적 배치를 알기 위해 분재를 배웠어요. 꽃병을 알기 위해 도자기를 배우며 우리 그릇의 아름다움을 느꼈고, 궁중자수, 칠보공예 등 시간 날 때마다 꽃과 관련된 모든 것을 배우려고 노력합니다.”
꽃을 꽂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녀는 아직도 배울 것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꽃과 함께할 사람, 장소, 시간 등이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고려해 그녀가 예쁘게 꽂은 꽃들은 일상에서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다양한 꽃집 손님 통해 인생 공부
이렇듯 꽃과 함께 30년 가까이 지내면서 가슴에 품은 추억 또한 많다. 15년 넘게 꽃집을 운영하다 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났다. 딸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아빠가 준비한 장미꽃. 아빠가 딸을 위해 수줍게, 그러면서 정성스럽게 장미꽃을 고르는 모습은 마치 소년처럼 느껴졌다. 연애하는 남성이 찾아와 어떤 꽃을 고를지, 뭐라고 쪽지를 써야 할지 고민할 때면 자연스레 연애 상담까지 하게 됐는데 신 대표는 학창 시절 썼던 연애편지의 느낌을 살려 그 남성 대신 연애편지를 써 주기도 했다. 중년의 남편이 아내를 위해 결혼 기념 꽃다발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아내에게 감사해야 할지, 무슨 꽃을 선물해야 할지 고민하는 남성에게 주 원장은 아내의 마음으로 정성껏 꽃다발을 만들어줬다.
신 대표는 “선물할 꽃을 사러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웃는 얼굴이에요. 다른 소품을 파는 가게에서는 바쁘다며 ‘빨리빨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많지만 꽃가게에선 그런 손님이 드물죠. 꽃이란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선물이에요.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특별한 선물이죠”라고 말한다.
하루는 40대 초반 여성 손님이 꽃을 고르기에 조언을 해주려다가 가슴 아픈 사연을 들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여성은 남편의 영정 앞에 무슨 꽃을 바쳐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위해 축하와 기쁨의 꽃을 준비하는데, 어떤 사람은 죽은 배우자를 위해 꽃을 고르는 모습을 보며 부부는 인생의 깊은 심연을 마주하게 됐다.
한 사람이 태어났을 때,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을 때, 회사에 입사했을 때, 결혼했을 때, 회갑과 칠순잔치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맞이했을 때, 이런 때 모두 축하 또는 위로의 꽃이 필요하다. 현대인의 삶의 사이클이 꽃집에 가면 보인다고 신 대표는 말한다. 생활에서 작은 고마움을 표시하려고 카네이션이 필요할 때도, 우울한 날 안개꽃이 필요할 때나 화사한 날에 장미꽃이 필요할 때도, 여전히 우리의 생활에 꽃이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고.
같은 고향 동네 친구로 만나 한평생 인연이 돼 한 이불을 덮은 지도 어느덧 33년. 이벤트성 꽃 문화보다 생활형 꽃 문화가 보급되기를 더 바라는 부부는 꽃이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달래고, 기쁜 일을 겪는 사람에게 기쁨을 배가시켜 주기에 좋다고 한다. 어쩌면 부부는 꽃꽂이 학원을 하면서 꽃보다도 꽃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꽃꽂이를 가르쳐 돈만 벌려고 했다면 보지 못했을, 많은 손님의 꽃 같은 삶들을 보며, 오늘도 부부는 열심히 인생 공부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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