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임채호 씨, 가계부 주효순 씨

‘고양 별별 기네스 올림픽’ 수상자

지역내일 2013-12-29

고양시민의 갖가지 진기한 기록과 재주를 발굴해 공개하는 기발한 올림픽이 12월 5일 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렸다. 지난 10월 공모를 통해 ‘고양 별별 기네스 올림픽’이란 이름으로 열린 이번 행사는 고양 600년을 기념해 시민들의 따뜻하고 재미난 휴먼스토리를 재조명 하자는 의미에서 개최됐다. 이날 다양한 장기와 진기한 기록을 선보인 본선 참가자는 모두 8명. 그중에서 행신동 햇빛마을 임채호 씨(75세)가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 292회를 완주한 ‘마라톤 풀코스 최고령, 최다완주자’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결혼 후 37년간 줄곧 가계부를 써온 마두동 강촌마을 주효순 씨(60세)는 주부관객들의 경이로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눈길을 끌었다. “소소하고 별 것 아닌 일”이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임채호 씨와 주효순 씨를 만나보았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마라톤 풀코스 최고령 최다 완주, 임채호 씨

햇빛마을 20단지에서 임채호 씨의 집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1층 아파트 외부에 ‘임채호 선생 마라톤 풀코스만 292회차’란 플랜카드가 걸린 곳이 바로 그의 집, 반갑게 맞아주는 노부부의 뒤를 따라 방안에 들어서자 40여 년 동안 받은 상장과 메달, 각종 기념품과 사진, 신문기사들로 가득하다. 1939년생 임채호 씨가 젊은 사람도 완주하기 어렵다는 마라톤 풀코스를 292회나 완주한 세월들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공간, 감탄이 절로 나온다.
처음 시작할 때는 마라톤이 아니었고, 그냥 무작정 달리기만 했다는 그의 마라톤 경력은 올해로 38년째. 1975년 무릎에 극심한 통증을 수반한 신경통을 앓으면서 아픔을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한데다 신경통으로 다리까지 절게 되자 건강을 위해 ‘걷기’를 시작했고, 우연히 거북이마라톤대회에 참가해 완주를 하게 되자 자신감이 생겨 그때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단다.
“달리기는 돈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데다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운동이어서 좋았다”는 그는 마라톤에 재미를 붙인 다음부터 매일 조석으로 10Km씩 뛰는 습관을 들였다. 4년 전 고양시로 이사오기 전까지 서울 은평구 남가좌동에서 30여 년 동안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아침에는 남가좌동 집에서 상암경기장 하늘공원까지 10km를, 또 저녁에도 10km에 달하는 거리를 하루도 빠짐없이 달렸다. 이후 달리기 실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자 매달 한 번씩 집에서 통일로를 따라 뛰는 ‘개인풀코스’ 도전을 계속했고 공식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하며 실력을 키워나갔다. 지난 88년 5월 풀코스 첫 성공 후 거의 매달 한 번씩대회에 참가해온 그의 최고기록은 1980년대 경주벚꽃마라톤대회에서서 세운 3시간 12분대이다. 또 지난 2001년 마라톤 풀코스 157회를 기록하며 한국판 기네스북에 올랐고, 67세에 167회 완주기록을 세우며 세계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의 마라톤인생에 위기도 있었다. 1996년 풀코스 100회를 완주한 후 모 일간지에 기사가 실리자 경남 함양 고향 향우회에서 연락이 왔다. “향우회에 자전거를 타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성산대로 부근에서 트럭과 부딪혀 발목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죠. 6개월 진단이 나왔는데 3개월 만에 깁스를 풀었어요.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고 다닐 때도 악착같이 하루 4km를 달렸죠. 그 덕에 지금 이렇게 걸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40여 년 전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반드시 건강해지겠다고 결심을 했다는 그는 굳은 의지로 지금까지 풀코스 마라톤 292회라는 기록을 남겼다.
“최근 2년간 마라톤을 거의 못했어요. 2년 전 아내가 고관절 부상으로 일어서지 못하게 되면서 그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는지 나도 몸이 많이 약해졌어요. 충격을 받은 데다 아내 병간호로 예전의 탄탄했던 몸이 많이 쇠약해지긴 했지만 요즘도 오래 뛰진 못해도 매일 달리기를 멈추지 않아요.” 이전의 건강을 되찾는 길은 역시 또 마라톤이라는 그는 “뛰다보면 중도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찾아오죠. 하지만 그걸 극복하고 완주했을 때의 희열은 어디에 비할 수가 없어요. 그 맛에 뛰는거죠.” 다행히 아내의 건강도 많이 좋아졌고 이제 남은 목표는 마라톤 300회 완주라는 임채호 씨.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에서 항상 태극기를 손에 들고 뛴다는 노익장의 멋진 모습, 곧 필드에서 만나기를 기원해본다. 



37년 동안 가계부를 기록해온 주효순 씨
“주부가 가계부 쓰는 일이 뭐 내세울 일이라고...다들 대단하다고 하는데 어릴 적부터 습관적으로 써 온 거라 그냥 쓰게 됐어요.” 가계부를 쓰겠다 결심하고 작심삼일 만에 포기하기를 수십 번 경험했던 리포터에게 그가 펼쳐놓은 가계부들은 존경을 넘어 경이롭게 느껴질 정도. 세월의 흔적이 담긴 가계부들은 개인의 역사를 넘어 표지 디자인, 종이의 재질 등 지나온 시대상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추억에 잠기게 한다.
“우리가 어릴 땐 대부분 대가족이었고 물자도 부족한 시대였잖아요. 우리 집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고 우리 5남매와 삼촌 2명까지 대가족이었어요. 삼촌도 저랑 2살 터울밖에 안 나서 고만고만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7명이나 됐고 경제권은 할머니가 쥐고 있어서 늘 필요한 돈을 타는게 전쟁이었어요.(웃음)” 학창시절 버스비며 학교에서 필요한 것을 사는데 늘 돈이 부족했고 매일매일 돈을 타내기가 힘들어서 생각해낸 것이 ‘기록’이었다는 주효순 씨. “얼마를 받았고 왜 돈이 부족한지 증거를 대기 위해서 말하자면 금전출납부를 기록한 거죠.” 그때의 습관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됐고 1976년 결혼을 하면서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여성잡지의 부록으로 화려한 양장본의 가계부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은행이나 농협 등에 부탁을 해서 얻었다는 가계부. 오래 전 가계부를 펼치니 빠듯한 봉급으로 콩나물 몇 십 원어치, 두부 한 모까지 꼼꼼하게 적은 젊은 새댁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가계부 하단엔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짧은 소회도 적어 가계부를 펼치면 그날 있었던 일들이 오늘 일처럼 떠오른다는 그이. 영수증 하나하나까지 붙여 놓아 때로는 그 덕을 톡톡히 보기도 했다고 털어놓는다.
“공과금이나 물건대금을 분명히 준 기억이 있는데 안냈다고 청구서가 다시 날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가계부를 들춰보니 다행히 영수증을 붙여 놓았더라고요. 또 한 번은 지인에게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는데 뭐 차용증 같은 거 받지 않았어요. 내가 필요할 때 받으려고 하니까 준 적이 없다고 하니 막막했죠. 그런데 가계부 하단에 제가 수표로 건네주면서 번호를 적어놓았더라고요. 그땐 아무 생각 없이 기록하는 버릇으로 적어놓은 것 같은데 덕분에 어려울 때 고비를 넘기기도 했어요.” 가계부를 쓰면 규모에 맞춰서 지출을 하게 돼 무엇보다 알뜰한 가계운영에 도움을 준다고. 덕분에 많지 않은 수입으로 두 아이를 대학원까지 보낼 수 있었고 예전에 비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가계부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84년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 오면서 그 이전의 것들을 잃어버려서 너무 아쉽죠. 이사를 다닐 때마다 그것 좀 이제 그만 버리라고 하던 아이들이 지금은 다 직장인이 됐는데 그래도 제가 가계부를 쓰는 걸 보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아이들 모두 쓸데없는 지출 안하고 며느리도 처음엔 가계부를 왜 쓰느냐고 하더니 요즘은 열심히 쓰는 것 같아서 감사하고 좋아요.” 가계부를 열심히 쓰는 것 뿐 아니라 그는 지난 2000년 직장 퇴직 후 고양시 경진학교, 홀트학교, 암센터 등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마두2동 통회장을 맡아 동네봉사에도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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