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산책 ‘버틀러’

실화가 건네는 잔잔한 울림의 메시지

지역내일 2013-11-25

영화 제목 ‘버틀러’는 대저택의 집사를 이르는 말이다. 영국의 신학자로 착각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지 ‘대통령의 집사’라는 친절한 부제가 붙어있다. 영화는 실존했던 인물 유진 앨런의 이야기 속에 미국의 역사와 흑인 인권의 변천사를 담아냈다. 마틴 루터 킹의 비장한 문구 ‘어둠으로는 어둠을 몰아낼 수 없다. 오직 빛만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로 시작한 영화. 하지만 영화는 무겁거나 어둡지 않다. 마치 버틀러 한 명이 8명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빛이라는 듯 시종일관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하려 애쓴다. 

버틀러1

두 얼굴의 버틀러, 두 얼굴의 영화
검둥이 하인이 된 주인공 세실은 두 얼굴로 살라는 조언을 듣는다. 버틀러로서 백인들 앞에 나설 때의 얼굴과 생활 속에서의 얼굴은 달라야 한다는 말이었다. 대놓고 이중적으로 살라는 얘기다. 흑인 인권문제가 시끄럽던 시절을 함께 겪어냈으니 개인적인 진심은 가려야 직장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바꿔 생각하면 세실은 34년, 8명의 대통령 앞에서 자기 생각을 아주 잘 가렸던 버틀러였다는 말이기도 하다.
주인공 세실 게인즈(포레스트 휘태커)은 아들 앞에서도 진심을 잘 드러내지 못한다. 진보적인 흑인 인권운동가인 맏아들. 두 사람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늘 관계를 예민하게 만든다. 아내하고는 또 어떤가. 아내는 남편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남편을 빼앗아간 백악관이 밉고, 외롭고, 쓸쓸하다. 착한 둘째아들은 대통령의 뜻을 섬기며 베트남전에 참여했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이, 어떤 생각이 그와 그의 가족의 오늘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가족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묵묵히 일을 하는 그이지만 한 순간도 솔직한 얼굴일 수 없었던 그이기도 하다.  

버틀러2

번쩍번쩍 초호화 캐스팅
영화 시작부터 관객들의 눈이 번쩍 뜨인다. 농장 일터에서 땀범벅이 되어도 눈부신 미모를 자랑하는 세실의 엄마, 머라이어 캐리의 등장 때문이다. 슬픔에 빠진 꼬마 세실의 손을 잡는 농장 할머니는 세계 영화제를 석권한 관록의 여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다. 또한, 성인이 된 세실의 아내는 오프라 위프리. 15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는 그녀는 깊이 있는 연기로 그녀가 분명 배우였음을 입증한다.
제인 폰다는 낸시 레이건으로 분했으며 최근 섹시스타로 주목받고 있는 민카 켈리는 재키 케네디를 연기했다. 역대 대통령을 연기한 배우들의 면면도 훌륭하다. 로빈 윌리암스(아이젠하워 역), 앨런 릭맨(레이건 역), 존 쿠삭(닉슨 역), 제임스 마스던(케네디 역), 리브 슈라이버(존슨 역) 등이다. 싱크로율 100%에 도전하는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 속에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섬세하게 살아난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어떻게 이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다 함께 출연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하긴 너무 많은 스타들이 나오니 눈 둘 곳을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그만큼의 방대한 에피소드로 집중력을 잃기 쉽다는 것이 이 영화의 작은 흠이긴 하다.

버틀러3

제 몫을 다하는 이의 아름다움
세실은 그저 버틀러로서의 제 본분을 다했을 뿐이다. 어떤 대통령이 좋다 나쁘다 평도 없었으며 흑인 인권을 위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지도 않았다. 하지만 맡은 일은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보여주었다. 엄마가 농장 주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아빠가 맥없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어린 흑인 소년이 몇 십 년 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을 볼 때 그 감동의 깊이는 어떠했을까.
세실은 흑인 인권운동가도 아니었고, 백인에 아부하며 사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성실히 묵묵히 제 몫으로 남겨진 일을 완성도 높게 해온 것뿐이다. 그를 옆에서 본 8명의 대통령들은 그가 그 어떤 백인보다도 성실하고 근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 그가 백악관에서 보여준 34년간의 성실함은 마틴 루터 킹과는 또 다른 영향력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제 자리에서 성실히 제 일을 해내는 자의 힘. 역사는 그런 개개인의 인생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임이 분명하다.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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