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이 재판상 이혼의 두 번째 원인으로 들고 있는 것은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입니다.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라 함은 배우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서로 동거, 부양, 협조해야 하는 부부로서의 의무를 포기하고 다른 일방을 방치함으로써 부부 공동생활을 일방적으로 폐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유기의 기간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당 기간 지속되어야 합니다.
부부 일방이 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 세 가지 의무를 전부 이행하지 않는 경우는 물론 그 중 일부 의무만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도 이혼 원인이 됩니다. 즉, 함께 살지 않으면서 생활비를 보내주는 경우라면 부양의무는 행하고 동거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인데 이러한 경우도 이혼의 원인이 됩니다. 반대로 함께 살고 있기는 하나 생활비를 전혀 부담하지 않고 협조도 하지 않는다면 동거의무는 행하면서도 부양의무와 협조의무를 행하지 않는 것이므로 역시 이혼의 원인이 됩니다.
한편 동거의무, 부양의무, 협조의무를 이행할 수 없는 것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즉, 직장 이직이나 학교 진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어 동거가 불가능한 경우, 건강이 갑자기 악화되어 부양의무나 협조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 등에는 부부 쌍방이 이를 허용하여야 하며 이러한 사유를 들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악의의 유기와 관련한 판례를 보면 부인이 배우자를 집에 혼자 남겨둔 채 집을 나와 입적하여 비구승이 된 채 10년간 귀가하지 않은 경우, 남편이 다른 여성과 축첩관계를 맺고 부인과 다른 곳에서 20년 이상 생활을 하였다면 부인의 생활을 위하여 맏사위와 딸의 공동명의로 주택을 마련해 주었다 하더라도 축첩행위 자체가 부당하게 동거의무를 불이행한 것으로서 악의의 유기에 해당함에 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악의의 유기를 원인으로 하는 재판상 이혼청구권은 법률상 그 행사 기간의 제한이 없는 형성권으로서 10년의 제척기간에 걸리기는 하나,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하는 것이 이혼청구 당시까지 존속되고 있는 경우에는 기간 경과에 의하여 이혼청구권이 소멸할 여지는 없습니다.
안현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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