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장은 서민들의 삶이 진득하니 묻어나는 곳이다. 장사로 삶을 영위하는 상인들과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 또 눈요기를 위해 오가는 이들이 함께 부대끼는 삶터이다. 날씨가 추워도 바람이 불어도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 안양일번가와 함께 한때 경기 남부권 일대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위용을 자랑했던 중앙시장을 꼼꼼히 들여다본다.
덤, 에누리..인정이 살아 숨쉬는 곳
안양시 만안구 안양4동 중앙시장. 정월대보름을 하루 앞둔 지난주 목요일. 나물과 잡곡을 장만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시장 안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시장입구 초입에 자리한 난전에서는 집에서 키웠다는 콩나물과 청국장을 가지고 나온 상인과 손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콩나물 이거 국산 맞아요?”
“그럼요. 우리 땅에서 농사지은 콩으로 집에서 키운 거예요. 수입하고는 맛이 달라요. 덤으로 더 드릴 테니 사 가지고 가세요.”
덤이라는 말에 그냥 가려던 손님의 발길이 멈춰지고 주머니에서는 1000원짜리 지폐 두 장이 고개를 빠끔히 내민다. 두부가게 앞에서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큼직한 두부가 그득하고 유난히 사람들로 북적이는 야채가게에는 “엄마”또는 “이모”를 목청껏 외쳐대는 점원의 목소리가 시장 안을 가득 메운다.
“사실, 재래시장은 주차가 불편하고 겨울철에는 춥지만 대형마트보다는 상품의 질이나 가격이 월등히 싸기 때문에 중앙시장을 찾습니다. 그리고 덤이나 에누리가 있어 물건 사는 재미가 쏠쏠하고요.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삶의 활력소가 되지요.”
안양9동에서 왔다는 한 주부가 들려준 말이다. 사람들의 말처럼 덤이나 에누리는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는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재래시장만의 매력이 아닐까?
청바지길, 본동길, 순대골목
중앙시장에는 유난히 골목이 많다. 그 골목마다 명칭이 있고, 유명한 순대골목부터 혼수철이면 문턱이 닳았다는 한복전문골목 그리고 청바지길과 본동길도 있다. 한 때 수도권 남부 최대의 시장이었던 중앙시장은 1962년 처음 개설되었다. 그때는 5일과 10일이면 군포, 의왕, 과천, 광명, 안산, 시흥 등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모여들던 큰 장터였다. 이후 1960년대 들어 우시장으로 바뀌면서 생필품을 판매하던 상인들이 지금의 중앙시장으로 옮겨왔고, 해가 거듭될수록 안양중앙공설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인근에는 995개의 점포와 300여 개에 이르는 노점상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던 중앙시장은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들어섬에 따라 상권이 많이 위축되었다. 채소, 과일, 포목, 어물, 의류, 잡화, 그릇, 침구 등 서민경제의 동반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재래시장이 지금은 거대 자본시장과의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 하지만 편리한 대형마트를 마다하고 굳이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중앙시장의 풍성한 먹거리
북적이는 저잣거리에서 감초같은 것이 바로 먹거리다. 시장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먹거리들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 중앙시장에는 유난히 이런 곳들이 많다. 만두, 호떡, 어묵, 순대, 떡볶이 등 포장마차의 대표적인 메뉴가 다 모인 골목에는 출출해진 뱃속을 달랠 요량으로 뜨거운 어묵국물 앞에서 행복해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호떡집에 불났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 호떡집과 저렴한 칼국수집은 서민 먹거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또 호박죽, 팥죽을 팔고 있는 시골죽집은 그야말로 시골정서 그대로이다. 흔히 말한다. 상인들에게 손님은 왕이라고. 그러나 소비자들 앞에서 당당한 상인들도 있다. 바로 시골죽집이 그런 집이었다. 소박한 가게 안에는 누런 호박이 가득 쌓여있고 큰솥에는 죽이 소리 없이 끓고 있었다. 시원한 동치미 한 사발과 곁들여먹는 호박죽은 어머니의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먹거리나 마찬가지다. 경제가 어렵고 유난히 힘겨운 겨울은 서민들에게는 혹독한 계절이다. 주머니가 얇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효자만두 가게는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유명한 만두가게로 가게 앞은 늘 북적거린다. 눈이 즐겁고, 입이 즐거운 그리고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중앙시장에는 이처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이, 그리고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삶의 현장이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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