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백가네 장터 백종훤 대표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것은

지역내일 2014-01-24

“저같이 평범한 사람도 인터뷰 대상이 됩니까?”
섭외를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수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 연신 쑥스럽다는 말을 버릇처럼 내뺕던 백종훤 씨였다.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50대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만나자고 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가부장적인 전통이 사라지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버지라는 역할은 막중한 책임감을 항상 어깨에 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밤을 낮 삼아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만큼이나 존경받아 마땅하지만 아버지의 권위는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는 현실이다. 아버지학교에서 15년 동안 수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봐 왔다는 그가 들려주는 우리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 

백종훤


가족과 소통 안 되는 이 시대의 아버지
60년 생, 베이비붐 세대인 그는 전북 진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이산을 보며 동양화가를 꿈 꾼 그가 택한 길은 고향을 떠나 대도시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여러 화방을 전전했지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고, 결국 군에 입대하면서 꿈을 포기하게 된다.
“요즘에는 예술가도 존경받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화가하면 못 먹고  사는 직업으로 인식해 부모님들이 반대를 많이 했죠. 특히 저 같은 장남은 동생들을 건사해야하니 아예 제 꿈과는 거리가 먼 안전한 직장을 찾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접고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렸고, 나름 성공해 무역업에 매진하면서도 그림이나 노래에 대한 열망은 한순간도 버리지 않았다는 그가 동생에게 모든 업무를 인수하고 열중한 일은 바로 아버지학교였다. 새중앙교회 아버지학교에서 수 년 동안 위원장을 역임하며 스텝 교육, 프로그램 진행 상황, 홍보 영상 제작까지 아버지학교의 총괄 지휘를 담당하며 느낀 것은 바로 사명감 같은 것이었다. 가난하고 배고팠던 6, 70년대 아버지상과 지금의 아버지상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 시대에 따라 가정의 사이클이 틀리고 이젠 그 사이클마저 무너지려고 한다는 것이 그를 가슴아프게 했다.
“예전에는 알콜중독이나 도박 등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났지만 지금은 가족 간의 소통이 안돼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요. 권위적이고 봉건주의적인 성향의 아버지들이 예전의 아버지였다면 현대사회에서는 친구처럼 놀아주고 편한 아버지가 가족들이 바라는 아버지의 모습이죠. 하지만 하루 채 5분도 되지 않는 대화를 통해 내 아내가, 내 가족이 어떤 아픔을 겪고 있는지 몰라 당황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가족들도 아버지는 돈만 벌어주면 역할을 다하는 것처럼 인식해 존경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다 고달픈 삶인지를 누누이 말하는 백종훤 씨.
하지만 아무리 가족 간의 사이클이 무너졌다해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으켜 세울 방법은 있다. 무엇보다 스킨십을 많이 하고 감정이나 느낌에 대해 표현을 자주 해주라는 것. 특히 자녀들에게는 진심 어린 칭찬이나 사랑 표현은 꼭 해주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아버지학교를 통해 십 수년 동안 많은 가정을 봐왔어요. 그동안 가족과의 관계에서 단절로 괴로워하던 아버지가 다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며 가정이 회복되는 모습, 그리고 자녀와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 감동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역할에 서투르다면 아버지학교를 통해 현명한 아버지로 거듭나는 것은 어떨까요? ”


농군이 되고 싶은 친환경 농산물 장터 대표
아버지학교를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는 그가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친환경 농산물 백가네 장터의 대표이다. 부친이 계신 진안과 해외를 다니며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먹거리의 중요성이었다. 특히 몇 년간의 외국생활에서 터득한 우리나라 음식의 우수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말하는 그. 그래서 생각한 것은 바로 친환경 우리 농산물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자연 방사 유정란을 포함해 국산 재료로 만든 청국장, 고추장, 된장 등을 소비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은 늘 설렌다. 닭장에 가두지 않아 스트레스 받지 않은 암탉이 낳은 유정란은 일반란과 비교해 가격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우리 몸에,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 또 전통 방식으로 우리 국산재료를 사용해 만든 장류를 소비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그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다.
“올해는 4년 동안 해 왔던 공부의 마침표를 찍는 해입니다. 아버지학교를 진행하다보면 아내들의 하소연이 많아요. 이런 저런 사연도 많았고 나름대로 고충도 많았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전문적인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족상담학과에 진학해 공부를 했습니다. 보다 유익한 곳에 제 능력을 펼치고 싶고, 향후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도 짓고 싶은데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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