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구암 허준이 집필한 불후의 명작 동의보감이 편찬 400주년을 맞은 해였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 기록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동의보감은 1613년 허준이 여러 증상과 그에 따른 처방, 의학 상식 등을 집대성한 일종의 임상 백과사전이다.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 등 다섯 편, 25권으로 이뤄졌으며 한국과 중국의 왕실 서고의 책 500권에서 참조한 당대에 쓰인 모든 의학정보가 포함돼 있다. 1995년 중국 장쩌민 주석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한중 문화교류의 아름다운 역사를 빛낸 작품이라고 동의보감을 높이 평가했다.
지난 9일 과천시의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동의보감 강좌 현장. 인문학과 생활 한의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강좌 듣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혈은 물과 같고, 기는 바람과 같다. 바람이 물 위를 스치듯 부는 것이 바로 혈과 기의 관계이다.(직지)’
“우리 몸에서의 모든 동력은 기로 통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혈을 물에, 기를 바람에 비유했고, 사람의 몸은 기를 다스리는 것이 우선이고, 혈을 조절하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도담 안도균 선생의 가르침에 수강생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한의학에서는 지나치게 기뻐하면 심이 요동하여 혈을 만들지 못하고, 갑자기 화를 내면 간이 손상되어 혈을 저장할 수 없다는 것. 또 건강하게 살려면 삶의 양식도 바뀌어져야 하며 늘 담담함을 유지하라고 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동의보감을 통해 내 안의 치유본능를 찾고, 몸과 삶과 생각이 하나되는 의학과 인문학의 만남을 원했던 사람들이 모여 과천 대중지성 동의보감 강좌를 만들었다.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 고미숙 선생에게 사주명리학 강의를 들었던 수강생들이 동의보감 입문과정을 거쳐 강독 과정을 개설한 것. 매주 목요일 10시만 되면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강의를 듣기 위해 이 곳을 찾는다.
마포에서 왔다는 한 주부는 “매일 레코드판 같은 삶을 살다가 일순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강좌에 주목했다”고 했고, 40대의 한 주부는 “허준은 드라마로 접한 것이 다였는데 이 곳에서 동의보감을 공부하게 된 것은 운명과도 같다. 이 시간은 나를 만나러 오는 시간이고 좋은 기운을 받아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2시간 가량 진행되는 강의를 듣는 수강생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단순히 건강강좌가 아닌 철학적인 사고와 접목된 강좌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잘먹고 잘살자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편한 삶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갑니다. 내 안의 나를 버리고 담담함으로 일관해야 하는데 정신수양이 부족해 잘 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동의보감 강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유익한 강좌인 것만은 틀림없답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는 길, 따뜻한 대추차를 권하며 한 수강생이 들려준 말이었다. 삶이 무미건조하고 건강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한 사람이라면 이 강좌를 꼭 들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 누구나 참여해 들을 수 있고 강의가 끝난 후 그룹 별 분담 토의 시간이 유익함을 더해준다고 했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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