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 펜팔이라는 게 있었다. 가요잡지 뒷면에 올라있는 것 중에 하나 골라서 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긴 힘들었지만, 그녀가 받았을 때 어떤 표정일지, 과연 답장을 보낼지,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런 고민을 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군대 있을 때는 위문편지도 받아봤다. 한 번도 본적 없는 여중생이 써 보낸 장문의 편지를 읽으면서 언젠가 전역해서 데이트를 하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또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등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얼굴도 모르는 그녀와 밤새도록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아빠도 한 때는 이렇게 감수성이 풍부하고 로맨틱한 남자였다.
사진 자료가 넘쳐나고, 실시간 동영상으로 전화를 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글자를 써서 소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긴 대화도 문자로 하는 경우가 많고,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도 ‘ㅋㅋㅋ’를 넣어서 문자를 날린다.
글자로 소통을 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내가 쓴 다음 상대가 보고 반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사이에 반응을 알 수 없는 순간 긴장감을 느끼게 된다. 친구가 약속에 늦었을 때, 전화를 해서 ‘어디냐?’라고 묻기 보다는 문자로 ‘어디냐?’라고 보내고 답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짧은 순간, 어떤 답이 올 지 모르는 짧은 순간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다. 요즘은 우체통이 없어질 지경이긴 하지만,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고 답장을 기다린다면 그 긴장과 흥분은 2배, 3배가 될 수 있다. 약속 장소에서 급한 마음에 문자를 확인했는데, ‘아직 30분 남았다’라는 아내의 메시지는 아빠를 화나게 하고, 일에 지쳐 퇴근하는 길에 ‘아들이 100점 맞았다’라는 문자는 아빠의 고통감을 줄여준다.
글자로 소통할 줄 아는 아이는 그 옛날의 아빠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자나 이메일이 너무 빨라졌다고 욕할 필요는 없다. 긴장감을 느끼는 시간이 줄었을 뿐, 긴장감의 존재는 여전하고, 긴장감의 빈도는 더 증가했다. 관건은 글을 통한 소통의 과정에서 즐거운 긴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아이의 첫 이메일 개통 및 첫 메일 발송과 수신은 아빠 몫이다. 아이가 문자를 보내면 한 번만 더 고민하고 답문자를 보내보자. 그 옛날 어디선가 아빠의 편지를 받고 즐거워했을 펜팔 친구를 떠올리며 아빠의 문자를 받고 즐거워할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하면 더 좋다.
지우심리상담센터 성태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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